스톨니츠가 말하는 미적 태도에서의 ‘무관심적’이라는 것은 대상에 대해 관심이 없는 ‘비관심적’과는 다르다. 무관심적이라는 것은 대상을 사용하거나 조작하여, 무엇을 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관심적이라는 것은 대상에 대해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 관심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적’이라는 것은, 감상자가 대상에 반응할 때 대상 자체의 조건에 의해 대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감상자는 자신을 대상과 분리시키는 신념이나 편견과 같은 반응은 억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상이 감상자에게 흥미롭게 지각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게 된다.
끝으로 ‘관조’란 단순한 응시가 아니라 감상자가 대상에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조는 활동과 함께 일어나기도 하는데, 일례로 음악을 듣는 감상자가 음악에 집중하여 멜로디를 따라 손으로 장단을 맞추는 모습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상에 적극적으로 주목하며 활동하는 것이 관조가 의미하는 바의 전부는 아니다. 대상의 독특한 가치를 맛보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러한 섬세한 부분들을 민감하게 인지하는 것이 식별력이다. 즉, 식별력을 갖추고 관조한다면 더욱 풍부한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식별력은 반복해서 예술 작품을 경험하거나, 작품에 드러나는 표현 기법이나 작품의 구성 요소와 같은 지식에 대해 공부하거나, 예술 형식에 대한 기술적 훈련을 함으로써 기를 수 있다.
-2021학년도 04월 교육청 전국연합학력평가-
미적 태도는 … 무관심적이면서 공감적으로 관조하는 태도이다. … 미적 태도에서의 ‘무관심적’이라는 것은 … ‘공감적’이라는 것은 … ‘관조’란
개념은 정의(定義)된다. 정의란 개념이 속하는 가장 가까운 유(類)를 들어 그것이 체계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를 밝히고 다시 종차(種差)를 들어 그 개념과 등위(等位)의 개념에서 구별하는 일이다. 이 말을 듣고도 정의를 이해할 수 없다면, 정의를 설명할 때마다 철수 샘이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제자: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스승: 두 발 달린 것이다.
제자: (사다리를 가리키며) 저것이 인간입니까?
스승: 아니다. 인간은 두 발 달린 짐승이다.
제자: (닭을 가리키며) 그럼 저것이 인간인가요?
스승: 아니다. 인간은 날개가 없는 두 발 달린 짐승이다.
제자: (원숭이를 데려오며) 그럼 이것이 인간이겠네요.
스승: 인간은 날개가 없고 두 발이 달렸으며 털이 없는 짐승이다.
제자: (원숭이 털을 다 깎고서) 이러면 이것이 인간이겠네요?
스승: 아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짐승이다.
제자: (생각에 잠겼다가) 그럼 스승님과 제가 인간이군요.
이 이야기에서 인간이 정의되기까지 크게 두 단계를 거쳤다. 하나는 인간이 ‘짐승’에 속함을 밝힌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생각한다’는 남다른 특성을 지녔음을 밝힌 것이다. 그 사이에 있는 ‘두 발이 달림’ ‘날개가 없음’ ‘털이 없음’ 등은 인간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성이 아니다. 쉽게 말해 정의는 개념이 어디[類]에 속하는지, 남다른 특징[種差]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도 ‘미적 태도’가 정의돼 있다. 그것은 ‘태도’라는 종류에 속하고, ‘무관심적이면서 공감적으로 관조’한다는 종차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종차인 ‘생각’이란 무엇일까? 이와 마찬가지로 미적 태도의 종차인 ‘무관심적’ ‘공감적’ ‘관조’란 무엇일까? 이와 같은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개념 정의가 또 다른 개념을 이용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념을 정의한 뒤에는 종차에 사용된 개념들을 또다시 정의하거나 설명하는 내용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 ‘미적 태도에서의 무관심적이라는 것은 … ’ ‘공감적이라는 것은 … ’ ‘관조란 …’ 하면서 나눠 설명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무관심적’이라는 것은 대상에 대해 관심이 없는 ‘비관심적’과는 다르다. 무관심적이라는 것은 … 무엇을 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에서 ‘그 개념과 등위(等位)의 개념에서 구별하는 일’이 정의라고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위에서 사례로 든 ‘닭’ ‘원숭이’도 동물에 속한다. 정의는 인간을 사다리와 구별하는, 즉 종류를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같은 종류에 속하는 닭, 원숭이와도 구별하는 작업이다. 이때 닭, 원숭이를 인간과 등위의 개념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도 ‘무관심’과 ‘비관심’이 언급돼 있는데, 이 둘은 등위의 개념이다. 둘 다 ‘태도’에 속하지만 ‘관심이 없다’는 것과 ‘무엇을 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이때 ‘무엇을 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를 ‘관심이 있다’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무엇을 취하려는 목적을’ 앞에 ‘관심은 있는데’라는 말을 보충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벤다이어그램을 이용하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관조’란 단순한 응시가 아니라 …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이 관조…의 전부는 아니다. … 식별력을 갖추고 관조한다.
개념을 자세히 설명한다는 건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A는 B가 아니라 C이다’ ‘A는 B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문장 구조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며 이 글을 읽어보자. 이 글에서 ‘관조’가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의미는 ‘단순한 응시’와 구별된다. 그런데 ‘관조…의 전부’가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는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에는 ‘관조’와 등위의 개념이 있다는 뜻이다. 뒤에 나온 설명에 따르면 그 차이는 ‘식별력’의 유무다. 이를 옆에 있는 벤다이어그램으로 이해해보자. 이를 고려하면 ‘관조는 식별력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주목하며 보는 것이다’라는 정의를 할 수 있다. 즉 관조는 ‘보는 것’에 속하고, ‘식별력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주목함’이라는 종차를 갖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 포인트
① 정의란 개념이 어디[類·류]에 속하는지, 남다른 특징[種差·종차]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임을 알아 두자.② 개념 정의가 또 다른 개념을 이용해 이뤄지기 때문에 개념을 정의한 뒤에는 종차에 사용된 개념들을 또다시 정의하거나 설명하는 내용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음을 알아 두자.
③ 어떤 개념과 등위(等位)의 개념을 구별하는 일은 벤다이어그램을 이용해보자.
④ ‘A는 B가 아니라 C이다’ ‘A는 B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문장 구조가 개념을 정의하는 데 활용된다는 것을 알아 두자.
※여기에 제시된 그림들은 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