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내년 3월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부채의 화폐화’(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바탕으로 정부 부채를 떠안는 것)를 시도할 것이다.”
홍콩계 증권사 CLSA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이재명은 누구인가(Jae-myung who?)’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지난달 초 발표했다. 대선 주자들의 경제정책 공약과 파장을 분석한 보고서가 드물었던 만큼 발간 직후 펀드 매니저들 사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이 보고서는 이 지사를 ‘포퓰리스트’나 ‘한국의 버니 샌더스’로 평가하면서, 그가 시중에 유동성을 쏟아내는 부채의 화폐화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부채의 화폐화는 중앙은행이 발권력으로 정부 씀씀이를 뒷받침하는 것을 말한다. 화폐 가치 하락과 중앙은행의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주요국 중앙은행은 이를 금기시하고 있다.
이 지사는 가계 소득을 불리기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종종 해왔다. 지난해 9월 6일 페이스북에 “국가의 가계이전소득 지원으로 가계 소득을 늘려 가계 부채를 줄이고 재원은 금리 0%인 영구채(만기가 무제한으로 상환할 의무가 없는 채권)로 조달하자는 최배근 건국대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적었다. 최 교수는 같은 달 5일 페이스북에 “연 54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전 국민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자”며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0% 금리로 30~50년 만기의 원화표시 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한은이 인수하자”고 썼다. 부채의 화폐화를 놓고 이 지사와 최 교수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 지사는 급기야 지난달 24일 최 교수를 자신의 대선캠프 정책조정단장으로 위촉했다. 기본소득을 비롯한 핵심 공약을 주도한 이한주 캠프 정책본부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데 따른 후속 인사다. 이 지사 캠프에서 상당한 역할을 부여받은 최 교수의 ‘발권력 동원’ 소신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 8월 31일 한 칼럼에 “중앙은행이 경제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돈을 공급하는 방식은 시중은행을 통해 국민에게 빌려주는 방식과 정부에 돈을 빌려줘 재정지출로 국민에게 돈을 공급하는 방식이 있다”며 “중앙은행이 공급한 돈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지출이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면 정부 채무는 늘지만 가계 부채는 늘지 않고 부동산 시장 과열도 막을 수 있다”고 썼다.
정부가 한은의 발권력을 활용해 가계에 돈을 살포하면 가계 살림살이가 좋아지고 집값이 안정된다는 논리다. “베네수엘라 전철을 밟자는 충격적인 이야기”라는 경제학계의 우려를 더 늦기 전에 한번 새겨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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