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인체 세포는 평생 분열을 거듭한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분열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엔 멈춘다. 염색체 말단에 있는 ‘노화 시계’ 텔로미어가 점점 짧아지며 사멸 준비를 한다. 그런데 늙은 세포에 특수 처리를 하면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게 가능하다. 역노화, 이른바 ‘세포 회춘’ 기술이다.
대표적인 세포 회춘 기술은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가 개발한 유도만능 줄기세포(iPS 셀)다. 세포를 부분적으로 역분화하는 4개의 인자(Oct4, Sox2, Klf4, C-Myc)를 일시적으로 발현시키는 기술이다. 유도만능 줄기세포로 손상된 간, 심장, 골격근 등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만 이 줄기세포는 악성 종양으로 둔갑할 수 있어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세포는 자체적으로 ‘부분 회춘’ 기능을 갖고 있다. 수명을 다했거나 기능이 떨어진 세포 내 소기관을 스스로 제거하는 ‘자가포식’ 시스템이다.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대 교수가 이를 밝혀내 201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소재분석연구부와 연세대 생명공학과 연구팀은 홍삼의 사포닌 성분인 Rg3(진세노사이드)가 자가포식을 유도해 인간 피부 섬유아세포를 역노화시키는 원리를 발견했다고 최근 밝혔다. 진피(표피와 조직 사이)에 있는 섬유아세포는 콜라겐 등을 만들어 피부 노화를 막는 첨병 역할을 한다. 라틴어 ‘비누(sapo)’란 말에서 유래한 사포닌은 천연 계면활성 물질이다. 진세노사이드는 Rg1, Rg3 등이 있는데 이 중 Rg3는 항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앞서 효소 실험을 통해 진세노사이드가 인간 피부세포 역노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지난해 밝혀냈다. 그러나 분자 수준에서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는 당시 확인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세포 열변화 분석기법’을 써서 진세노사이드가 세포 외막의 칼슘이온 통로 단백질 ‘오라이(ORAI)1’과 직접 결합해 자가포식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새로 발견했다. ‘세포 내 찌꺼기를 제거하라’는 신호등 및 촉매 역할을 진세노사이드가 한다는 뜻이다. 진세노사이드가 오라이1과 만날 때 세포 내 항산화 물질을 분비하는 단백질도 함께 증가하는 것이 관찰됐다.
조광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시스템생물학 기법을 써서 노화한 인간 진피 섬유아세포를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시스템생물학은 정보기술(IT) 기반 수학 모델링과 세포 실험을 융합해 생명 현상의 원리를 찾는 학문이다. 올해 한국인 최초로 영국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정된 이상엽 KAIST 부총장이 이 분야 개척자다.
연구팀은 인간 진피 섬유아세포의 노화 신호 전달 네트워크를 수학적으로 설계했다. 분자생물학 관련 기존 연구 빅데이터와 직접 실험으로 확보한 단백질 인산화 데이터를 활용했다. 이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4년간 진행한 결과 단백질 타깃 ‘PDK1’이 각종 노화 형질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반대로 PDK1을 억제하면 늙은 피부 세포를 젊게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조 교수는 “PDK1은 피부세포뿐 아니라 인체 전반에 걸쳐 활력을 되찾게 할 수 있는 타깃”이라며 “이 기술을 토대로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 기술을 최근 이전받아 피부 주름을 개선하는 화장품을 개발 중이며 내년 초 선보일 예정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