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월 23일)은 이종덕 전 예술의전당 사장의 1주기다. 얼마 전 연극배우 박정자 선생님과의 통화 중 고인의 기일을 기억하며 함께 애도했다. 고인의 친구이자 오랜 동료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낸 영화인 김동호 선생 등 많은 이들이 고인을 기리고 있다.
‘대한민국 제1호 예술 분야 최고경영자(CEO), 예술 경영의 달인, 한국 공연계의 마에스트로’ 등 고인을 향한 수식어만 보더라도 그는 우리 문화예술계의 대부였다. 1963년 문화공보부 예술과에서 문화예술계와 인연을 시작한 고인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기획이사, 88서울예술단 단장,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지내고 1995년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충무아트홀(현 충무아트센터)까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공연장의 CEO를 역임하며, 50여 년간 한국 문화예술계를 위해 헌신했다.
나와의 본격적인 관계 맺음은 충무아트홀 CEO 시절이다. 충무아트홀 공연기획부장에서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재직하며 6년간 이종덕 사장을 모셨다. 나에게 고인은 진정한 ‘리더’의 본보기를 보여준 아버지 같은 스승이다. 사석에서 나눈 고인과의 대화, 그리고 말씀들이 나에게 ‘리더’와 ‘경영인’의 자세를 갖춰 가는 데 큰 몫으로 묻어나고 있다.
“지금, 네가 서 있는 그 자리가 ‘꽃’ 자리다.” 고인이 내게 자주 해준 이야기다. 이 문구는 지인이 글씨로 적어 보낸 선물로 알고 있다. 고인은 이 문구를 좋아했다. 집무실 벽에도 붙여 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항시 보고, 읽으며 늘 이 문구를 이야기했다. 꽃 피울 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꽃’이 필 자리라는 것. 그렇게 꽃을 피울 결심과 마음, 정성으로 그의 리더십은 발휘됐고, 또 그걸 배운 내가 꽃 한 송이 피우고자 이렇게 서 있다.
1주기가 되니, 고인에 대한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더러 고인을 ‘무섭다’고 기억하는 이도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충무아트홀은 그의 마지막 CEO 이력이다. 마지막 이력을 함께한 인연, 시기의 영향인지 내게 고인은 카리스마와 동시에 친숙함과 따뜻함으로 기억된다. 워크숍 장기자랑 시간에 유도 경력을 내세우며 낙법 시범을 보이다 손목이 골절됐던 장면, 70대에도 직원들과의 융화를 위해 무엇이든 동참하려던 그 모습과 유머가 생각난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돌아가시기 며칠 전, 꼭 문화계 어른으로 다시 돌아와 달라는 나의 간절한 부탁에 ‘꼭 그러마’ 의지를 불태우던 모습이 생각난다.
고인은 성 라자로 마을에서 긴 안식을 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던 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에 가슴 한편이 막힌 것 같았다. 오늘,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문화예술계의 대부, 이종덕 사장의 1주기를 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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