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 증산 계획이 무산 위기에 내몰렸다. 물량을 다른 공장에 배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노조의 반대 탓이다. 노조의 ‘공장 이기주의’가 현대차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를 미국에 더 많이 공급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 차량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물량이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팰리세이드는 매월 6000~7000대가 미국으로 수출되는데, 판매는 월 8000~9000대씩 이뤄지고 있다. 미국 판매법인은 한국에 2만~3만대가 한꺼번에 들어와야 공급 부족이 해소된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당장 생산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팰리세이드는 울산 2공장과 4공장에서 생산되는데, 이들 공장은 팰리세이드를 더 만들 여력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팰리세이드는 미국에서 인기가 많은 차종이라 지금보다 두 배가량 더 팔릴 잠재력이 있다”며 “물량이 없어 소비자가 이탈하고 있고, 딜러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팰리세이드 인기는 여전하다. 2018년 출시된 차량이지만 여전히 한 달 이상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내년 5월 팰리세이드 부분변경 모델(페이스리프트)이 나오면 물량 부족 현상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공장에서 만드는 다목적차량(MPV) 스타리아를 전주공장으로 옮기고, 4공장에서 팰리세이드를 더 생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상용차를 만드는 전주공장은 몇 년째 생산할 물량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주공장 물량 부족 문제와 팰리세이드 공급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4공장 노조의 반대에 부딫혔다. 자신의 물량을 다른 공장에 줄 수 없다는 이유다. 현대차 생산직은 특근(주말근무)을 많이 할수록 임금을 더 받는다.
전주공장 노조가 환영의 뜻을 밝히고 현대차 노조 지도부도 이 방안에 찬성하는 뜻을 내비쳤지만, 4공장 노조는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있다. 반대 집회까지 계획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공장에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전형적인 공장 이기주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노조 지도부도 “우리 내부에서 물량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또 다른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며 “고객 수요가 높은 차종을 빠르게 해소해야 현대차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 울산 4공장 노조는 과거에도 팰리세이드 물량을 놓고 고집을 부린 적이 있다. 2019년 당시 팰리세이드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어 증산해야 하는 데도 다른 공장과 물량을 나누기 싫다고 버티다 고객 2만여 명이 계약을 해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