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도가 높을수록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기현상이 은행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금융상식’이 파괴되는 현상은 금융당국이 대출 총량을 규제하면서도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카카오뱅크는 8일부터 신규 신용대출 한도를 7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마이너스통장은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축소했다. 만기 연장이나 재약정 등 기존 대출은 일괄적으로 한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기존 5000만원 초과 마이너스 통장의 이용 금액이 한도 대비 50% 이하면 만기 연장 시 최대 30%까지 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 반면 중저신용자 대상의 중신용대출(1억원)과 중신용플러스대출(5000만원) 한도는 유지하기로 했다. 카뱅 측은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고신용자 대출의 한도를 축소하기로 했다”면서도 “중저신용자의 대출 기회를 늘리자는 취지에서 관련 대출 상품의 한도는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신용자 한도를 중저신용자보다 낮게 책정하자 “신용도가 좋은데 한도가 적은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연초 신한·우리은행에 이어 하나은행과 국민은행도 최근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였다. 고신용자라면 어느 은행에서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아도 카뱅의 중신용대출 한도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한도 역전현상’이 나타난 것은 당국이 인터넷은행에 중금리 대출 비중 확대를 요구하는 동시에 가계대출 총량은 규제하는 상반된 정책을 펴고 있어서다.
카뱅의 최저금리도 마이너스통장과 중신용대출이 각각 연 3.3%로 동일해졌다. 지난 2월 고신용자 신용대출 최저금리를 0.34%포인트 올린 반면 중신용자 금리는 5월, 6월에 연이어 1.2%포인트, 1.5%포인트 내린 영향이다. 아무리 신용이 좋아도 중신용대출의 최저 금리 이하로는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카뱅은 작년 말 10.2%였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올해 말 20.8%, 내년 말 25%, 2023년 말 30%로 늘리겠다는 계획안을 당국에 제출한 상태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방관하다시피 했던 가계대출을 갑자기 임의로 조이자 금리가 역전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고 말했다.
카뱅은 9일 신규 가입부터 예·적금 기본금리를 0.3~0.4%포인트 인상한다. 1년 만기 기준 연 1.2%이던 정기예금 금리는 연 1.5%로 오르고 자유적금 금리는 연 1.3%에서 연 1.6%로 뛴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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