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한국은행에 은행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채권을 매입하라고 요구했다. 한은이 발권력을 활용해 사실상 소상공인 대상 자금 공급에 직접 나서라는 얘기다. 재난지원금 지급 등 현금살포성 정책에 집중해온 정치권이 독립성이 중요한 중앙은행을 준(準)재정정책에 무분별하게 동원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한은은 현재의 양적완화 정책을 조정하는 한편 소상공인·자영업자 채권을 매입하는 포용적 완화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계층의 금융 지원을 위해 시중은행 등에 있는 자영업자 대출채권을 한은이 매입해 대환대출하는 등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는 요구다.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중앙은행이 직접 하든, 채권매입전문기구(SPV)를 통해서 하든 고금리 소상공인 채권을 매입하고 금리를 인하해 재대출 등을 하는 방법”이라며 “금리 인상 국면에서 금융취약계층에 이자를 감면해줘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지난해 SPV를 설립해 회사채를 매입하고 있는데 이를 자영업자에게까지 확대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윤 원내대표는 재난 발생 시 한은이 피해를 본 영리기업 등의 채권 매입을 허용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이미 발의했다. 그는 “금융중개지원대출에서 소상공인 지원 비중을 높여야 한다”며 “한은이 저금리로 시중은행에 자금을 공급하면 소상공인은 이자 부담을 덜 수 있다”고도 했다.
민주당이 한은을 동원해 부작용이 큰 방식으로 자영업자 구제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여당이 재난지원금 살포에만 신경쓰다가 결국 중앙은행에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적절하지 않은 정치행위”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실상 돈을 그냥 찍어내겠다는 말”이라며 “소상공인 지원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정부 재정으로 하는 게 맞다”고 했다.
고은이/김익환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