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KAIST 특훈교수(연구부총장·사진)의 별명은 ‘연금술사’다. 그의 연구실에서는 썩는 플라스틱은 물론 바이오연료, 식용 색소, 코로나19 치료 후보물질까지 다양한 시제품이 나오고 있다. 미생물의 유전자를 합성해 인간에게 필요한 화학물질을 합성해내는 시스템대사공학의 창시자가 이 교수다.
이 교수가 보유한 ‘최초’ 기록도 많다. 지난 5월 뉴턴, 아인슈타인 등 역사적인 과학자들이 거쳐간 과학 아카데미인 영국왕립학회의 첫 한국인 회원으로 선정됐다. 미국공학한림원과 미국국립과학원 회원이면서 영국왕립학회에도 가입한 외국인 회원은 미국·영연방 국적을 제외하고는 이 교수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최근 고(故)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의 이름을 딴 포니정혁신상을 받으면서 최초의 과학 분야 수상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이 교수는 “원유가 고갈되면 플라스틱처럼 편리한 소재를 다시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후손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시스템대사공학”이라고 말했다.
시스템대사공학은 미생물 유전자 구조를 변형해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존 대사공학도 미생물의 유전자 구조를 변경해 원하는 물질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은 같다. 컴퓨터 기술을 더해 유전자 변형을 세포 전체 수준에서 더 정교화한 것이다.
유전자가 변형된 미생물은 인간에게 필요한 화학물질을 합성해낸다. 바이오에탄올·가솔린·디젤을 생산하거나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을 합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생산성이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이 교수는 “최근 친환경·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친환경 공정 전환도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이 교수의 대학 시절 전공은 역설적이게도 화학공학이다. 198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그의 꿈은 석유화학공장을 지휘·감독하는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었다. 진로가 바뀐 건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유학하면서부터다.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노스웨스턴대로 갔더니 당시 유망한 분야로 떠오르던 생물화학공학이 들어오더라고요. 마침 테리 파푸차키스라는 저명한 교수가 그 대학에 부임한 터라 교수님에게 부탁해 전공을 바꾸게 됐습니다. 그 덕분에 생물학을 독학으로 하느라 고생 좀 했죠. 고교 때까지 생물학 공부를 한 번도 안 했던 대학원생이었으니까요.”
이 교수의 다음 목표는 코로나19 최종 치료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6218종의 후보물질을 찾아내 동물시험 중이다. 그는 “언제 개발이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치료물질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