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열풍에 코스닥벤처펀드가 인기를 끌자 제로금리 전환사채(CB) 발행이 늘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가 벤처기업 신주나 CB BW(신주인수권부사채) 등 메자닌을 의무적으로 편입해야 해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발행된 CB는 총 6조6636억원어치다. 지난해 발행된 물량(6조4150억원)보다 많았다. 금리가 0%인 전환사채도 늘었다. 8월 CB(비상장·SPAC 제외)를 발행한 42곳 중 16곳(38%)이 표면·만기금리가 모두 0%짜리였다.
CB는 만기까지 약속된 이자를 받다가 만기가 오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주식 전환 권리를 주는 대신 이자가 낮은 편이다. 채권을 발행하자니 신용등급이 낮거나, 대출을 받자니 금리가 높을 때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CB의 표면·만기금리가 모두 0%일 경우 회사에선 공짜로 돈을 조달하는 셈이다. 투자자는 만기 때 주가가 올라야 주식으로 바꿔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는 않다. 콜옵션이 붙은 CB도 함께 늘고 있다. 지난달 표면·만기금리가 0%로 발행된 CB 16개 중 13개에 콜옵션이 붙어 있었다. 콜옵션은 발행사가 CB 만기 전에 투자자로부터 CB를 다시 사들일 수 있는 권리다. 제로금리에 콜옵션까지 붙어 있다면 투자자로선 CB를 사 봐야 이자도 못 받고 만기 때 주식으로 바꿔서 시세차익도 못 올리게 된다.
투자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에 모든 주식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 순 없으나, 발행금액의 50%까지 행사가 가능한 콜옵션이 붙은 CB가 늘고 있다. 지난달 제로금리에 CB를 발행한 바이오톡스텍, 라파스, 와이제이엠게임즈 등 3사는 콜옵션 한도가 발행금액의 50%였다.
증권가에선 코스닥벤처펀드 급증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는 공모주 물량의 30%를 우선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경쟁률에 투자자들이 펀드를 통해 우회투자하면서 덩치가 커졌다. 이때 코스닥벤처펀드가 공모주를 우선배정 받으려면 펀드의 15%를 벤처기업 신주나 메자닌으로 채워야 한다. 펀드 크기가 커지면 공모주만으로 채우기 힘들어 메자닌 수요가 발생하는 구조다. 제로금리에 콜옵션이 붙은 CB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만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스닥벤처펀드의 CB 수요가 증가하면서 한계기업까지 편승해 CB를 발행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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