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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면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 있다 [나는 90년대생 투자심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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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잡앤조이=이정준 퓨처플레이 투자심사역] 벤처투자를 집행하는 심사역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지 10개월, 이번 글에서는 일하면서 느낀 업의 본질에 대해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아마 심사역을 경험하신 분들은 비슷하리라 생각하는데 적어도 이 직업에서는 열 손가락을 깨물어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 있다. 즉, 그만큼 더 마음이 쓰이는 피투자사가 있고, 그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쓰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렇다.
개인적으로 아픈 손가락은 단순히 기대 수익이나 커리어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피투자사 대표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팀이 촉망받는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구축했는지 혹은 뛰어난 사업적 성과를 보여 높은 수익을 회수할 것으로 기대되는 지보다, 대표가 얼마나 진실하고 겸손한지 혹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근거 없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든지 와 같이 정성적인 부분에서 마음이 간다는 뜻이다. 섣불리 일반화하기 어렵겠지만 대개 신뢰감을 주는 창업자가 있는 팀은 팀원들도 그런 경우가 많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의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팀의 대표님과 나는 무언의 신뢰 관계가 구축되어 있는데, 그 날 대표님과의 일화는 어떤 자세로 이 일에 임해야 할지에 대해 울림을 주었다.

한 대기업 계열 관계자가 투자 심사 미팅을 요청했다. 스타트업에게 투자금이란 목마른 가뭄에 단비와도 같기에 대표님은 주저 없이 그 미팅에 응했다. 그날의 미팅은 평범한 투자 유치를 위한 IR 미팅일 뻔했다. 관계자가 앞으로의 사업 계획보다 핵심 기술 파악, 제품의 스펙에 유난히 집중한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의심 없이 기술 설명을 했던 대표는 뒤늦게 기술 유출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팀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까 싶어 팀원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말할 수 없어 속앓이하던 대표님은 결국 내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하소연할 곳이 없었어요."

팀원들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내용을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어 내게 연락을 주었다고 말씀하시는 대표님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창업자란 참으로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다. 결국 심사역 이란 업의 본질은 '창업자가 신뢰하고 가장 먼저 연락할 수 있고, 창업자의 부름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이 아닐까.

사실 창업자에게 어떤 심사역이 되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나 같은 꼬꼬마 VC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견을 주더라도 그 내용이 어찌 창업자들의 깊이 있는 고민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물론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안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까 언제쯤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명확해지는 것 같다. 창업자에게 주말이나 밤에 걸려오는 전화가 귀찮아지거나, 창업자로 하여금 더 이상 나와 유대 관계를 쌓고 싶어 하지 않을 때가 은퇴의 적기가 아닐까.

"창업자의 부름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
이런 영광스러운 직업에 임해볼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고, 부디 이런 초심을 잊지 않고 오래 오래 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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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준 투자심사역은 한성과학고, 서울대를 졸업해 두 번의 창업을 경험했다. 그 경험을 무기로 현재 퓨처플레이 투자심사역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스타트업과 소통하고 있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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