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와 관련된 우려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너무 높다’ ‘최근 몇 년간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너무 급등했다’ 내지는 ‘가계부채가 금융회사들의 부실로 번질 수 있다’ 정도로 요약된다.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를 이용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계산해 보면, 한국은 상위권인 7위에 올라 있다. 해당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상위 10개국(스위스·호주·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캐나다·한국·뉴질랜드·스웨덴·영국 순) 중 한국을 제외한 9개 국가는 모두 MSCI 선진국 지수에 속한다. 반면, 하위 10개국(폴란드·체코·코스타리카·콜롬비아·슬로베니아·라트비아·헝가리·멕시코·터키 순) 중 MSCI 선진국 지수에 속한 국가는 없고, 6개국만 MSCI 신흥국 지수에 속해 있다. 과연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금융시장 위험의 척도인지 발전의 척도인지 아리송하다.
또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데이터가 제공되는 2007년부터 가계부채와 명목 GDP 증가율을 계산해 보면, 전자는 연평균 7.6%, 후자는 연평균 4.5%씩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4년 동안 가계부채는 연평균 7.9%, 명목 GDP는 0.4%씩 증가했다. 결국 최근 4년간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급등은 급격한 가계부채 증가율이 아니라 10분의 1로 줄어든 명목 GDP 증가율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물론 연평균 증가율 7.6% 혹은 7.9% 모두 묵과할 수 없는 수치지만, 굳이 가계부채 비율의 급등을 문제 삼는다면, 가계부채 억제보다는 경제성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2007년 이후 전체 가계부채 중 주택금융(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집단대출 등)은 꾸준히 52% 정도, 기타 대출(기타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 신용대출 등)까지 합하면 95% 정도를 유지해왔다. 즉, 가계대출의 95%가 강력한 LTV(담보인정비율) 규제하에서 담보를 충분히 확보한 담보대출이거나 고신용자들의 신용대출이다. 따라서 1997년 외환위기 정도의 경제 전반의 충격이 아니라면, 일부 한계차주들의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금융회사의 부실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계부채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필자는 여러 연구논문, 보고서, 기고문 등을 통해 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 민간신용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경기역행적이지만, 한국과 여러 신흥국에서는 경기순행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예기치 못한 큰 지출이 발생하면, 호경기에는 가계들이 늘어난 소득으로 일부 충당하지만, 그렇지 못한 불경기에는 온전히 대출 증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민간신용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경기역행적인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강력한 LTV 규제하의 우리 경제에서는 담보가치가 상승하는 호경기에 가계대출은 오히려 증가한다. 또한 담보가치의 상승에 따른 자금 유입은 호경기에 시장이자율을 외려 낮춰 경기 변동폭을 확대하며, 원화 가치를 상승시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등 우리 경제에 갖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결국 가계부채 문제는 양적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다.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를 양적 문제로 오판하고 억누르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계차주로 인한 금융회사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 LTV 규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가계의 원리금 상환능력을 고려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가계부채의 양적 팽창뿐 아니라 경기순행성까지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점진적 개선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가계대출 상한을 정하고 금융회사의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시키는 등 과도한 총량규제 방식은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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