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신용대출 만기가 돌아온 개인들에게 “한도를 감액하고 금리를 올리겠다”고 일제히 통보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신용대출도 본격적으로 죄기 시작한 것이다. “대출 증가세를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연 증가율 6% 이내)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대출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섰던 개인들은 좌불안석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겹친다면 ‘금리의 역습’까지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도 줄이고, 금리 올려야 연장 가능”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최근 마이너스통장 계약이 끝나는 고객에게 한도는 20%가량 줄이고, 이자는 30%가량 높이겠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 연소득 8000만원인 40대 직장인 A씨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본인 소유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4000만원이 필요해졌다. 은행에 마이너스통장 한도 상향을 요청했지만,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은행은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1억1000만원에서 9000만원으로 줄이고, 금리를 연 2.5%에서 연 3.3%로 높여야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사에서 5000만원 규모의 연 7.5%짜리 신용대출(카드론)을 받아 이 중 1000만원을 은행 대출을 갚는 데 썼다. A씨의 대출액 1억원 기준 월 이자 부담은 월 20만8000원에서 31만원으로 1.5배 증가했다.해당 은행은 “금융당국이 1억원 이상의 고액 신용대출을 줄이라고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주요 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최저 연 1.99%(개인 신용 1등급 기준)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연 2% 후반에서 시작해 3%대 후반까지 높아졌다.
앞으로 A씨 같은 사례가 속출할 전망이다. 은행 관계자는 “전산 개발 등이 완료되는 대로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연소득으로 제한해달라는 당국 요구를 시행할 것”이라며 “소급 적용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매년 연장하는 마이너스 통장 계약 특성상 당분간 소비자들은 조건이 나빠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중채무자 ‘비상’
금융당국은 ‘가계부채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겠다’는 의지다. 금리상승과 자산가격 하락이 맞물리고, 대출자산이 부실화되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당국이 은행에 이어 저축은행에도 대출 한도를 죄라고 요구한 것은 저축은행의 다중 채무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올 1분기 전체 금융권의 전체 대출 중 다중 채무자 잔액 비중은 31.8%인 데 비해 저축은행의 다중 채무자 대출 잔액 비중은 73.2%에 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급여소득자에 비해 신용점수가 낮은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은 영향이라는 분석이다.전방위 대출규제로 인해 급전을 융통하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를 전망이다. 기존에는 은행 대출이 막히면 이자를 더 내고 2금융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당장 창구에서 자영업자들이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된 이용계층인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절벽’도 현실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자 폭탄에 자산가격 변동성 예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기존 대출자의 이자부담은 더욱 늘고 자산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이 경우 ‘영끌’ ‘빚투’에 나섰던 고신용자, 주식과 암호화폐 구매에 뛰어들었던 ‘2030세대’도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20~30대는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은행에 259조원의 빚을 지고 있다. 1년 전보다 20%(44조원) 증가한 규모로 이는 같은 기간 은행권 전체의 가계대출 증가율(10%)의 두 배에 달한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금융브리프 보고서를 통해 “2020년 고신용자 대출이 2017~2019년 연평균 증가율 11.2%를 넘어선 21.2%를 기록했다”며 “이들이 금리 상승의 여파도 더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득 증가 속도를 넘어서는 가계부채 증가는 금융시스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며 “부채 쇼크가 현실화한다면 소득과 신용도에 상관없이 모든 경제주체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김대훈/박진우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