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투명한 비닐과 같은 필름을 잡아당겨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했다. 빛의 투과량을 조절할 수 있으면서 신축성이 좋아 웨어러블 기기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스마트 창 등 분야에 활용될 전망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인공지능연구소 휴먼증강연구실은 광 투과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고분자 투명필름(사진)을 KAIST와 함께 개발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 기술은 지난달 영국왕립화학회(RSC)가 발행하는 학술지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보통 스마트 창은 유리 또는 투명한 필름 내 광 투과도를 조절하는 물질을 발라 만든다. 디스플레이도 빛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필름 또는 광량 조절층에 액정, 기능성 나노입자 등을 분산시켜야 한다.
ETRI 연구팀은 광량 조절 물질이나 입자 등을 넣지 않고 팽창, 수축이 가능하면서 빛의 투과율을 최대 100%까지 차단할 수 있는 필름을 개발했다. 이 투명필름은 고분자 용액을 빛으로 굳히는 ‘광 경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고분자 용액에 포함된 고분자와 용매가 빛을 받으면 화학적으로 뭉치는 원리다.
연구팀은 빛을 통해 반응하는 고분자 물질과 용매 간 관계를 인공지능 기술 등으로 분석, 고분자를 나노입자 크기로 자연 분산시키는 최적 함량 비율을 찾아냈다. 인공적으로 광량 조절 물질을 넣지 않아도 빛의 차단이 가능한 신소재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고분자 필름을 잡아당길 때 생기는 고분자 사이사이 공간(기공)에 따른 빛의 굴절률 변화를 유도하는 게 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통과하는 빛의 양이 줄어들면서 투명필름이 불투명하게 보인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고분자 필름은 신축성이 좋아 상하, 좌우로 늘렸을 때도 바로 복원된다. 기존 순수 고분자 필름은 기공이 생기면 탄력적 복원이 불가능했다. 연구팀은 처음으로 완전 고분자 필름에서 이런 신축성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 기계적 자극만으로 광도 조절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국내 고분자 필름 제조업체의 일반 제조공정과 동일해 기존 장비로도 쉽게 제조할 수 있다”며 “대면적화도 쉬워 빠른 상용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고분자 소재 업체, 디스플레이 업체 등에 기술 이전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간 중심의 자율지능 시스템 원천기술 연구’ 과제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한국을 포함해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 5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앞으로 연구팀은 환경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카멜레온 필름’을 개발하는 후속 연구를 할 예정이다. 버튼만 누르면 주변 색과 같게 변해 위장 군복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카멜레온, 문어 등 자연계 생물에 존재하는 은폐 기술을 웨어러블 디바이스, 소프트 로봇 등 형태로 응용하는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고승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폴리머 필름과 온도 감응형 액정잉크, 은나노와이어 히터를 통해 다양한 색으로 표현 가능한 카멜레온 로봇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필름 형태의 웨어러블 소자에 센싱 기술과 제어 로직을 넣어 시스템을 단순화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기계적, 전기적 안정성이 뛰어나며 굉장히 얇은 필름으로 적층돼 있어 열손실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성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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