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가 88만 명에 육박하는 유튜버 밀라논나(Milanonna·본명 장명숙·69·사진). 그를 수식하는 말은 참 길다. 한국인 최초의 밀라노 패션 유학생,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의상 디자이너, 페라가모와 막스마라 등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패션 바이어, 패션 컨설턴트….
2019년 개설한 유튜브 채널 ‘밀라논나’의 구독자가 급증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장명숙 씨가 에세이집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김영사)를 내놨다. 밀라논나는 밀라노와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논나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책 출간을 기념해 18일 온라인으로 연 간담회에서 장씨는 “젊은 사람들에게 남의 시선, 평가에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책에서도 그는 “남이 보더라도 괜찮은 삶보다 내가 보더라도 만족하는 삶이 낫지 않을까?” “더 나아지기 위해 내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다”라고 말한다.
이 같은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건 장씨의 인생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는 현모양처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에 입학했다. 부모의 성화에 결혼을 일찍 했고, 아이도 낳았다. 부모님은 그가 가정을 꾸렸으니 평범하게 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26세이던 1978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밀라노 마랑고니 패션스쿨을 졸업했다.
그의 스승은 “명숙은 디자이너로 살기엔 보수적이고,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살기엔 감성이 풍부해 평생 갈등할 것”이라고 했다.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영향이었다.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경찰서에 끌려갔던 당시의 보수적인 시대상도 한몫했다. 장씨는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하겠어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해요.”
1994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그는 그곳 명품 담당 고문이었다. 그는 월·수·금요일에 출근했는데 사고는 목요일에 발생했다. 하루 차이로 그는 살았고, 동료들은 죽었다. 그가 항상 ‘오늘’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오늘을 제대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육원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번 책으로 얻는 인세도 모두 복지단체 등에 기부할 계획이다.
“어쩌다 보니 유튜버가 됐어요. 은퇴 후 봉사활동과 독서, 산책으로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어느 날 젊은 후배가 ‘선생님 경력이 아깝다’며 유튜브를 권했죠. 처음엔 구독하면 돈을 내야 하는 줄 알고 사람들에게 ‘구독해주세요’라는 말도 못 했어요.”
장씨는 아직도 하루하루가 설렌다고 했다. 책 제목처럼 “인생은 귀하니까”. 그는 “앞에 수많은 선택지를 놓고 고민이 될 때면 ‘재밌으면 해보면 되지’라고 되도록 단순하게 생각했다”며 “모든 어른과 아이가 자기 인생에 용기를 내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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