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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제게 그림은 '딸자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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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의 배를 반으로 갈라 포르말린 용액에 담근 작품으로 일약 유명해졌고, 뒤이어 실제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작품으로 또다시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는 현대미술의 총아라 불린다. 섬을 하나 사서 거기서 작업을 하며, 작품을 보러 손님이 오면 개인 비행기를 보낼 정도다. 그의 작업을 돕는 조수만 무려 150명에 달한다고 하니 놀랍다. 모두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너도 저렇게 살아볼래”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섬 관리와 비행기 운영 비용에 150명의 월급을 어떻게 줄 것이냐가 제일 큰 걱정거리가 아닐까 싶다. 한 달에 작품을 도대체 얼마나 팔아야 저 인원이 계속 유지될까 하는 걱정 말이다. 물론 그림값이 상상을 초월하고 세계의 이름 있는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고도 들었다. 사업가라면 몰라도 새가슴인 나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다. 밤낮으로 작품을 만들고 또 만들어야 유지되지 않을까. 아이디어만 내고 150명의 조수가 대신 그린다고 해도 말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천직이라고 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매일 반복돼도 즐거우면 그게 바로 천직이다. 취미는 언제나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취미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면 이미 취미가 아닌 것이 되고, 당연히 그 직업도 천직이 아니게 된다. 허스트의 하루하루는 취미처럼 즐거울까? 그래서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것이다.

가끔 내게도 조수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묻는 의도와 상관없이 그림은 딸자식 같다고 생각하는지라, 귀한 딸을 어찌 남의 손으로 키우랴? 어느 날 모르는 딸이 나를 찾아와 “아버지~”라고 부르면 어떻게 할 거냐고 반문하고 손사래를 치며 웃고 넘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행복한 취미 활동을 왜 남에게 미루나? 내가 즐기기에도 바쁜데 말이다.

그림이 딸자식 같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쁘게 잘 커서 좋은 사람 만나 잘사는 거 보고 싶고 사돈댁과도 돈독한 관계가 계속 유지되길 원하는 것처럼, 그림도 잘 그려서 좋은 컬렉터를 만나고 그 컬렉터와의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 십수 년 동안 이어오는 인연들을 가끔 만나면 딸 안부를 묻듯 그림 안부를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인연들은 친정아버지가 잘돼야 딸이 기죽지 않고 살듯이, 그림이 계속 사랑받도록 화가로서 더 노력하는 이유가 된다. 어쨌든 취미가 직업이 된 나의 하루하루는, 태어날 막내딸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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