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국 민간 최대 완성차업체인 지리자동차를 중심으로 중국의 자동차 산업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차이나스톡에서 지난주에 전기차와 배터리를 다뤘고요, 그 전에도 두세 차례 전기차 관련 내용을 전달해 드렸는데 전통적인 완성차업체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미국에서 테슬라가 GM을 시가총액에서 앞선 것처럼 중국에서도 전기차 신세력 주가가 기존 완성차업체를 앞서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민간기업 규제가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정부 영향이 적은 영역으로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자동차도 그런 차원에서 주목할 만 하다고 판단됩니다.
2017년 중국 토종 1위
먼저 지리자동차 주가부터 좀 보시겠습니다. 지리자동차는 홍콩증권거래소에 2003년 상장했습니다. 종목코드는 0175이고요. 주가가 10년 넘게 5홍콩달러를 못 넘다가 2016년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지리차 연간 판매량은 40만에서 50만대 수준이었는데 2016년에 77만대, 2017년 125만대, 2018년 138만대 순으로 급격하게 판매가 늘었습니다.
중국 토종 완성차업체들의 경쟁력이 급격하게 높아진 시점이 바로 그 때였습니다. 중국 전체 자동차 시장을 보면 2009년 1033만대에서 6년 뒤인 2015년 2115만대로 불과 6년 만에 두 배로 커집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동차 수요가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 자동차 시장은 국유기업 중심이었습니다. 중국 북쪽 지린성에는 제일자동차, 중국식으로 읽으면 디이자동차가 있습니다. 남쪽에는 후베이성에 둥펑자동차, 상하이에 상하이자동차가 있고요. 이렇게 3대 업체를 1차 2차 3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서부 충칭의 창안자동차까지 합해서 빅4라고도 하고요.
이런 국유기업들이 해외 완성차업체들과 합자회사를 차려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디이와 폭스바겐의 합작사인 이치폭스바겐, 상하이폭스바겐과 상하이GM이 대표적이고 둥펑차는 일본 빅3와 손을 잡았습니다. 해외 완성차업체들은 중국 내 기반을 잡고 있는 국유업체들과 합자회사를 차리는 게 유리했고요. 그만큼 민영 완성차회사들의 입지는 좁았습니다.
볼보자동차 인수 계기로 도약
지리는 꾸준히 기술력을 닦아서 결국 틈새를 뚫어냈습니다. 77만대를 판매한 2016년에 중국 전체 브랜드 중 10위, 민간 기준으로는 만리장성차로도 불리는 창청자동차에 이어 2위를 했고요 2017년부터는 민간 1위에 전체로도 5위 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볼보나 다른 브랜드들을 뺀 지리자동차의 올 상반기까지 판매량은 64만대고요, 민영 중에선 역시 1위고, 전체 브랜드 중에서는 99만대를 판매한 이치폭스바겐, 65만대의 창안자동차 다음으로 3위입니다.
지리차가 이렇게 경쟁력을 끌어올린 원동력 중 하나는 스웨덴 볼보자동차를 인수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볼보자동차는 1999년 볼보그룹에서 분리돼서 미국 포드로 인수됐습니다. 포드는 볼보자동차 말고도 재규어, 랜드로버, 애스턴마틴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을 대거 인수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다 토해냈습니다.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이때 인도 타타자동차로 넘어가면서 소속이 같아졌고요.
지리는 볼보자동차를 18억달러 약 2조원에 에 인수했는데 이후 100억달러, 약 10조원 넘게 투자했습니다. 그러면서 볼보자동차 본사를 스웨덴에 남겨두고 경영에는 간섭을 안하겠다는 약속도 유지했고요. 다만 볼보의 R&D 성과물들을 지리로 가져와서 자동차 성능을 향상시켰습니다. 이후 메르세데스벤츠를 갖고 있는 독일 다임러의 지분도 9.7% 인수했고요.
현재 지리자동차그룹은 지배구조 정점에 지리홀딩스가 있고요, 그 아래 지리자동차 볼보자동차 지리상용차 이렇게 세 그룹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홍콩증시 상장사는 지리자동차입니다.
전기차 업체로 빠르게 변신
제가 지리를 주목하는 부분은 전기차를 포함한 스마트카, 미래차 기업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는 측면입니다. 지리자동차 주가를 길게 보면 2017년 민영 1위를 할 때 27홍콩달러까지 오르면서 고점을 찍었고요, 이후 10홍콩달러까지 내려갔다가 지난 1월 28홍콩달러로 역대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습니다. 그때 나온 소식이 바이두와 전기차 협업을 한다는 거였습니다.
바이두는 중국 1위 검색엔진이고요, 현재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개방형 자율주행기술 개발 플랫폼인 아폴로를 운영하고 있고요, 아폴로를 통해 확보한 자율주행 데이터가 누적 300만㎞를 넘는다고 합니다.
지리와 바이두는 두 회사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두자동차를 설립했습니다. 지분은 바이두가 55%, 지리가 45%를 갖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500억위안, 약 8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첫 스마트카 출시는 2022년께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첫 전기차를 내놓은 다음 1년에서 1년 반 간격으로 신차를 계속 내놓겠다는 계획입니다.
중국 빅테크들과 협업
지리는 바이두 합작을 발표한 다음 며칠 뒤에는 대만 폭스콘하고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밝혔습니다. 폭스콘은 애플 협력사로 유명한 대만 기업이고요. 폭스콘은 작년 1월 전기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한 뒤 파트너를 찾다가 중국 민간 1위 지리차를 찾았습니다. 폭스콘과 지리자동차의 합작사도 지리가 개발한 전기차 플랫폼에 폭스콘의 IT 기술을 접목할 계획입니다.지리는 또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와도 스마트카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텐센트는 전기차 신세력 웨이라이, NIO의 2대주주이기도 하고요. 독자적으로 무인차 기술도 개발하고 관련 스타트업들에 투자도 지속해 왔습니다.
지리는 최근에 프랑스 르노자동차와도 합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르노는 작년 코로나19 사태로 기존 둥펑자동차와의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중국 시장을 떠났다가 1년여 만에 다시 지리와 손잡으면서 복귀하는 겁니다. 지리와 르노는 중국에서 하이브리드카를 개발해서 판매할 계획이고요, 또 르노의 자회사인 한국의 르노삼성도 이 차를 국내에 맞게 현지화해서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전기차 브랜드도 육성
지리차는 이런 협업들과 별도로 독립된 전기차 법인을 설립할 계획입니다. 현재 전기차 브랜드만 지커 펑예 폴스타 등등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브랜드들을 통합 정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지난 4월에는 독립 전기차 법인이 판매할 지커 001이라는 신차도 공개했습니다. 한 번 충전으로 700㎞를 달릴 수 있다고 하고요, 가격은 28만1000위안부터 시작합니다. 경쟁상대로 지목한 테슬라 모델3는 24만9900위안부터 시작합니다.
지리를 창업한 리슈푸 회장은 중국에서 자동차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은 경영자로 꼽힙니다. 리 회장은 전기차 독립법인 설립을 추진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IT기업들이 전기차 산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의 기본 법칙인 규모의 경제는 바뀌지 않는다. 물량을 많이 생산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에서 지리가 다소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도 다양한 업체들과 협업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모회사 부채는 부담
다음으로 지리의 리스크 요인을 보면 모기업인 지리홀딩스의 부채 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지리홀딩스의 작년말 부채는 1550억위안, 약 27조5000억원입니다. 2019년말 1260억위안, 22조3500억원에서 20% 넘게 불어난 겁니다.주력 자회사인 볼보나 홍콩증시 상장된 지리자동차는 부채 문제가 없고요, 모기업 부채가 자회사로 전이되거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지리홀딩스는 홍콩의 지리자동차를 상하이증시 과학기술보드인 커촹반에 상장해서 자금을 융통하려고 했습니다. 작년 6월에 상장 심사를 신청했고 IPO 규모는 200억위안, 약 3조5000억원로 예정했습니다. 상하이거래소는 9월에 승인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인 증권감독위원회가 지리자동차의 기술 수준이 커촹반에 상장할 만큼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사실상 중단시켰습니다.
다음으로 추진하고 있는 게 볼보자동차의 상장입니다. 볼보자동차는 올해 말까지 스웨덴 스톡홀름 거래소에 상장한다는 계획이고요. 상장 후 기업가치를 200억달러, 23조원 수준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볼보자동차는 상장을 하면서 신주발행도 하겠지만 지리홀딩스가 갖고 있는 주식의 구주매출도 할 전망이고요, 이게 성공하면 지리홀딩스 부채 문제도 일부 해소될 전망입니다.
볼보자동차는 중국에서 모회사인 지리홀딩스와 50대 50으로 갖고 있는 생산부문과 판매부문 자회사들을 완전 자회사로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지리홀딩스 보유 지분을 사들인 건데요. 볼보자동차는 완전 자회사로 만들면서 경영 자율성을 높인다고 설명하긴 했습니다만 모회사인 지리홀딩스를 지원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리는 또 럭셔리 전기차 브랜드를 표방하고 있는 폴스타도 상장시킬 계획입니다. 폴스타는 원래는 볼보의 고성능차 브랜드였는데, 이후 정체성을 전기차만 생산하는 기업으로 전환했습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