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다. 가족과 밥을 먹는 등 소소한 것을 하고 싶다.”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 여자 배구 ‘에이스’ 김연경(33)은 아쉬움과 후련함이 섞인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3·4위전에서 세르비아를 상대로 모든 것을 쏟아낸 뒤였다. 차오르는 눈물을 꾹 누른 김연경은 “사실상 오늘 경기가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경기”라고 말했다.
결과는 세트 스코어 0-3(18-25 15-25 15-25) 완패. 비록 그토록 바라던 메달은 손에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김연경과 황금세대’의 ‘라스트댄스’는 해피 엔딩이었다. 김연경은 “사실 누구도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지 예상하지 못했고 우리 자신도 이렇게까지 잘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며 “후배들이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귀국 후 오한남 대한배구협회장을 만나 국가대표 은퇴 의사를 전달할 계획이다. 만 17세 때인 2005년 태극마크를 단 김연경은 16년 동안 여자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처음 쓴 뒤 한국에 ‘여자 배구 붐’을 일으킨 것도 그였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8강에 이어 도쿄 대회 4강까지 굵직한 국제 대회 성과 중심엔 항상 그가 자리했다.
김연경과 황금세대를 이끌고 한국 여자 배구의 4강 신화를 쓴 스테파노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은 “김연경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얼마나 강한 선수인지 알게 됐다”며 “김연경은 배구 역사상 최고 선수 중 한 명이며 그가 보여준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동메달) 이후 45년 만에 올림픽 메달 사냥에 나섰던 한국 여자 배구는 최종 성적 4위로 올림픽을 마감했다. 비록 메달은 없었지만 온갖 악재 속에서 거둔 엄청난 성과였다.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미뤄진 사이 대표팀 주축이던 이다영 이재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 폭력 논란으로 하차했고, 강소휘 등은 본선을 앞두고 부상으로 이탈했다. 올림픽에 앞서 열린 2021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선 3승 12패로 16개 출전 팀 중 15위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은 숙적 일본을 누르고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8강에서 만난 세계랭킹 4위 터키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누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비록 메달은 없었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은 세르비아를 상대로 초반 ‘목적타 서브’를 앞세워 1세트 중반까지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김희진(30)의 서브 에이스 2개, 김연경의 터치 아웃 득점 등으로 11-8까지 앞서갔다. 그러나 17-17 상황에서 세르비아의 속공에 연속 4점을 내줬고 김희진의 공격이 코트를 벗어나 순식간에 흐름을 뺏겼다. 상승세가 꺾인 한국은 2, 3세트에선 힘없이 끌려가며 세르비아에 경기를 내줬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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