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취소를 직접 압박하고 나선 가운데 한·미 군 당국은 “한·미가 결정할 사안”임을 강조했다. 군 당국은 훈련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에서 예정대로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여당 일각에서도 남북한 관계를 고려해 훈련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이 잇달아 나오며 훈련의 규모 등을 두고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김여정의 담화에 대한 질문에 “국방부 차원에서 언급할 내용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한·미는 코로나19 상황, 연합 방위태세 유지, 전시작전권 전환 여건 조성,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긴밀하게 협의중”이라며 “시기, 규모, 방식 등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도 같은 질문에 “북한의 입장에는 언급하지 않는다”며 “연합훈련은 한·미 양국 결정”이라고 말했다. 양국 군 당국이 김여정의 담화가 연합훈련 실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훈련의 구체적인 실시 방향에 대해서는 함구한 것이다.
통신연락선 복원으로 남북한 관계 복원을 기대하던 정부·여당에서는 연합훈련을 두고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평화 유지를 위한 방어적 성격이고 전작권 회수를 위한 필수 훈련이기도 하다”며 “이것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날 “실기동 훈련이 없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임을 거듭 강조했는데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반면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더라도 미국 본토 근무 미군 상당수가 국내로 들어와야 한다”며 훈련 연기를 거듭 주장했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도 “통일부는 연합훈련이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가 지난달 30일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한·미 군 당국은 사전연습 시작까지 일주일 가량 남은 연합훈련의 규모를 축소해 진행하는 방향으로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연합훈련은 최소 3개월에서 1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훈련 연기는 취소를 의미한다”며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사실상 적성 국가인 북한에게 훈련 취소라는 양보를 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연합훈련 취소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북 관계 악화의 책임을 돌리고 향후 도발의 명분을 쌓기 위해 김여정 명의의 담화를 발표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