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선수들의 손가락 감각은 남다르다. 화살이 손가락을 떠나는 순간 제대로 쐈는지 금방 안다. 과녁 중앙의 카메라 렌즈를 깨뜨리는 ‘신궁의 경지’도 손감각으로 먼저 안다. 정곡(正鵠·과녁의 한가운데 점)을 찌르는 궁극의 힘이 손끝에서 나오는 셈이다.
손가락에는 감각신경세포가 많이 몰려 있다. 그래서 ‘제2의 뇌’로 불린다. 한국인의 긴손바닥근(장장근·長掌筋)은 서양인보다 5배나 발달해 있다. 학계 일각에선 그 비밀을 ‘젓가락 문화’에서 찾는다. 젓가락질에는 50여 개의 근육과 30여 개의 관절이 동시에 쓰인다. 그만큼 대뇌 움직임이 빨라지고 집중력과 근육 조절능력이 커진다.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 골프 선수들의 손감각 역시 뛰어나다. 한국이 활쏘기나 골프, 사격, 탁구, 핸드볼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마다 “쇠젓가락으로 콩 한 알까지 집어 올리는 손재주 덕분”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혹자는 오랜 전통의 공기·윷놀이·자치기 같은 ‘손(手) 놀이’를 배경으로 꼽는다.
반도체 등 정밀 분야에 앞선 한국 산업을 ‘젓가락 테크놀로지’로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젓가락을 잘 사용하는 민족이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럴 때 손(젓가락)은 하드웨어, 손재주(젓가락질)는 소프트웨어다.
서양인은 발바닥근(족척근·足蹠筋)이 발달한 때문인지 육상 축구 등 ‘발 스포츠’에 능하다. 하지만 이젠 옛말이다. 한국인에겐 서양인이 흉내 낼 수 없는 발재간이 따로 있다. 국기인 태권도의 날렵한 발차기와 전통무예 택견의 부드러운 발기술은 현란할 정도다. ‘품밟기’라는 보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택견 기술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유럽의 독무대였던 펜싱에서도 한국은 10여 년 전에 벌써 빠른 스텝을 활용한 ‘발 펜싱’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번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이탈리아를 45-26으로 꺾고 금메달을 딴 것도 0.17초 이내에 승점을 올리는 발기술 덕분이었다.
손발이 빠르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고도의 집중력, 체계적인 인재 양성, 치열하고 공정한 대표 선발, 협회장을 맡은 기업인 등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기에 영광이 더 빛났다. 우리 선수들이 남은 경기에서도 손발 빠른 한국인의 저력을 마음껏 발휘하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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