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두고 국민의힘이 내분에 휩싸였다. 당내 친윤(친윤석열)으로 분류되는 중진 의원들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 전 총장을 폄하했다고 십자포화를 날렸다. 이 대표는 중진 의원들의 공격에 대해 “선을 넘었다”고 반발했다. 이 대표는 “윤 전 총장을 위한 꽃가마는 없다”며 ‘대선버스 정시 출발론’에 다시 한번 힘을 실었다.
친윤, 이준석 흔들기 나서
정진석·권성동 등 윤 전 총장과 친분이 있는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23일 이 대표 압박에 나섰다. 최근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을 비빔밥의 당근으로 비유한 것이나, 지지율 하락 추세를 ‘위기’라고 진단한 데 대한 공개 반발이다. 이 대표가 당선된 지 한 달가량 지나 허니문 기간이 끝나자 중진 의원들이 본격적인 ‘이준석 흔들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정 의원은 이날 SNS에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요인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윤석열’”이라면서 “윤 전 총장을 우리 당이 보호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위해 싸워줄 것인가”라고 썼다. 지난 재·보선 승리를 발판으로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이 대표를 저격하는 동시에 윤 전 총장 엄호에 나선 것이다. 정 의원은 윤 전 총장을 향해 “고향 친구”라고 표현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그는 “당내 주자에 대해서만 지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등 쓸데없는 압박을 윤 전 총장에게 행사해서는 곤란하다”며 최근 국민의힘 지도부의 결정에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의 이 같은 조치는 당내 후보 지원과 함께 윤 전 총장 등 외부 대선 후보를 견제하고 입당을 간접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윤 전 총장과 같은 검사 출신인 권 의원도 “당대표는 후보들에 대한 평론가가 아니다”며 이 대표 때리기에 가세했다. 그는 “요즘 당대표의 발언을 보면 극히 우려스럽다”며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을 위험하다고 평하는 것은 정치평론가나 여당 인사가 할 말이지, 정권교체의 운명을 짊어질 제1야당의 당대표가 공개적으로 할 말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22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이준석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야권 주자의 가치를 떨어뜨려 자신의 가치를 높이지 말라”고 했다.
이준석, 중진에 “발언 자제하라”
이 대표는 중진 의원들의 공세에 “선을 넘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내 중진 의원들을 향해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며 발언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 전 총장을 계륵으로 비유했을 때나 라디오 방송에서 윤 전 총장 장모 의혹이 제기됐을 때 방어해준 게 누구냐”며 자신이 윤 전 총장을 폄하하고 있다는 의혹을 일축했다.
윤 전 총장을 도와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대 의사를 전했다. 이 대표는 SNS에 “당외 주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야 한다느니, 꽃가마를 태워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에 선명하게 반대한다”며 “공정한 경선을 위해 흔들림 없이 가겠다”고 적었다. 윤 전 총장 입당과 관계없이 당내 예비 경선 일정을 시작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대권 후보인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중진 의원들이 이 대표를 공격한 것에 대해 “정당의 구성원이 사적 인연을 앞세워 공적 책무를 망각하는 것은 올바른 정당인의 자세가 아니다”며 “당원과 국민의 뜻으로 선출된 대표를 분별없이 흔드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김용태 최고위원도 “일부 대권 주자들의 지지율에만 일희일비해 헤쳐모여식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친윤 중진의 행보를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8월 내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전망했다. 지지율 반등을 위한 돌파구로 국민의힘 입당을 선택하는 방안이 유력해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윤 전 총장 캠프 내에서도 독자 행보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중진 의원들의 윤 전 총장 공개 옹호 발언이 향후 입당을 위한 ‘판 깔아주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