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컨벤션 회사 이즈피엠피는 전체 직원 90명 중 정보기술(IT) 인력만 30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10배 넘게 늘었다. 회사 관계자는 “가상전시, 웨비나 등 온라인 행사 증가로 인공지능(AI), 가상·증강현실(VR·AR) 등 디지털 기술 활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회의기획 회사 엠더블유네트웍스는 지난해부터 ‘미팅 테크놀로지 전문회사’라는 타이틀을 추가했다. 국제회의, 학술대회 등에서 해외 연사 강연을 홀로그램으로 촬영, 송출하는 디지털 사업을 시작하면서다. 최근엔 VR·AR을 활용한 버추얼(가상) 플랫폼 서비스도 시작했다.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업계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온라인 행사 증가로 디지털 기술 활용이 늘면서 아예 내부에 IT 전담팀을 꾸리고 주력 사업을 행사 기획·운영에서 디지털 회의기술 운영으로 전환하는 곳도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서비스 중심의 ‘마이스 3.0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빨라지는 K마이스 디지털 전환
이즈피엠피는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온라인과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치른 행사만 18건에 달한다. 연말까지 남아 있는 행사도 10건이 넘는다. 지난해 온라인 행사 플랫폼 ‘이즈(ez) 스마트 마이스’를 개발한 이 회사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어린이 체험전 관제용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을 단 3~4개월 만에 온라인 행사 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했다.부스디자인 회사 나라디자인도 지난해 행사가 줄줄이 취소돼 부스 디자인과 시공 일감이 사라진 위기 상황을 온라인 행사 플랫폼 개발을 통해 이겨냈다. 이 회사가 IT기업과 공동 개발한 온라인 전시 플랫폼 ‘넥스포(NEXPO)’에선 지금까지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 기본소득 박람회, 한국 전자전 등 굵직한 정부·기관 주최 박람회가 열렸다.
한신자 이즈피엠피 대표는 “온라인 행사 플랫폼을 빠르게 준비한 덕분에 그나마 코로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등 떠밀리듯 디지털 전환에 나섰지만 빠른 대응으로 피해를 줄이고 소기의 성과도 올릴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마이스 분야의 디지털 전환은 대면 행사가 온라인 비대면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다. 가상전시, 웨비나,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열리는 하이브리드 행사가 일반화되면서 디지털 전환이 자연스럽게 빨라지고 있다.
김봉석 경희대 컨벤션전시경영학과 교수는 “수요 증가가 공급을 늘리고 있다는 점에서 마이스 분야 디지털 전환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시장 변화의 큰 줄기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서비스회사, “마이스 조연에서 주연으로”
디지털 기술 활용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이른바 ‘디지털 뉴딜’ 성공 사례도 늘고 있다. 전시주최 회사 메쎄이상은 지난해까지 연 1회 열던 캠핑 박람회를 올해 3회로 확대했다. 상당수 전시·박람회가 규모를 줄이거나 취소하는 상황에서 반대로 행사 횟수를 늘린 건 이례적이다. 이상택 메쎄이상 부사장은 “코로나 이후 유일하게 관심과 수요가 증가한 분야가 ‘캠핑’ ‘차박’이라는 빅데이터팀 분석 결과에 따라 캠핑 행사를 늘린 것”이라고 설명했다.연간 62개 전시·박람회를 여는 메쎄이상은 전체 150여 명의 직원 중 25%가 IT 인력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5월부터 IT솔루션팀에서 직접 개발한 무인 등록시스템 ‘키오스크’ 50대를 제작해 행사 현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열풍은 조연에 머물던 서비스 분야 회사의 평가도 바꿔 놓고 있다. 특히 기술력을 갖춘 마이스 서비스 회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의전·수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광·마이스 벤처회사 그라운드케이는 지난달 회사 설립 6년 만에 벤처캐피털로부터 10억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 운수회사용으로 개발한 B2B(기업 간 거래) 모빌리티 플랫폼 ‘티라이즈업’이 투자자 사이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성복 그라운드케이 상무는 “아날로그 방식의 의전·수송 업무를 디지털화한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코로나를 기점으로 달라지면서 서비스 이용 회사가 일곱 곳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묻지마식’ 디지털 전환은 경계해야
달아오른 분위기에 편승한 ‘묻지마식’ 디지털 전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적잖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한 디지털 전환이 반대로 경영을 악화시키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하니까 나도 한다’식의 맹목적인 디지털 전환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조언이다. 디지털 전환도 철저한 계획과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정광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를 도입하기에 앞서 먼저 조직(회사)의 디지털 수용능력, 역량 등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정한 디지털 전환 수준과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