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국민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57·사진)이 현지시간 18일 오후 4시58분(한국시간 오후 8시58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의 제3 고봉인 브로드피크(8047m) 등정에 성공한 뒤 한 말이다. 이날 히말라야발(發) 낭보를 접한 대한장애인체육회와 광주광역시 산악연맹 관계자들은 환호했다. 이번 등정으로 김 대장은 ‘장애인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등정 성공’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김 대장은 가셔브룸1봉을 정복한 지 2년 만에 브로드피크에 올라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목표를 이뤘다. 한국은 이탈리아와 함께 국가별 14좌 완등 1위(7회) 자리에 올랐다. 14좌 완등은 세계 전체로도 44회밖에 되지 않는다.
김 대장은 지난달 14일 유재강(등반대장), 정우연(장비·식량), 정득채(수송·포장) 등으로 구성된 ‘브로드피크 원정대’를 이끌고 파키스탄으로 출국했다. 김 대장의 브로드피크 도전은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원정도 녹록지 않았다. 현지 도착 후 고소 적응을 마친 원정대는 지난 14일 새벽 2시 등정길에 올랐다. 캠프1(5800m)을 넘어 11시간 정도 지난 오후 1시30분께 캠프2(6400m)에 도착한 원정대는 거센 바람을 동반한 기상 악화로 캠프2에서 이틀을 보냈다. 16일 바람이 잦아들어 캠프3(7100m)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17일엔 캠프4 구축 예정지인 7500m 부근의 크레바스(빙하 사이 깊은 틈)로 인해 7200m 지점에 텐트를 설치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원정대는 같은 날 밤 11시(한국시간 18일 오전 3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칼날처럼 이어진 1.8㎞ 길이의 서쪽 능선을 공략해 세계 12번째로 높은 브로드피크에 올라섰다. 캠프4를 나선 지 18시간여 만이다.
김 대장은 1983년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2009년 남극 빈슨 매시프(4897m) 등정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올랐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로체(8516m)봉 연속 등정에도 성공했다.
시련은 일찍 찾아왔다. 27세이던 1991년 5월 22일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 단독 등반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 16시간에 걸친 구조대의 노력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극심한 동상을 입어 의료진으로부터 “열 손가락을 모두 절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한동안 극심한 좌절감에 빠져 있던 김 대장은 장애인 동계올림픽 출전을 통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났다.
재기를 결심한 그는 스키를 통한 하체 근력 강화에 집중해 1999년 장애인 스키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2002년에는 솔트레이크 동계 패럴림픽에도 참가했다. 강한 하체는 손가락 없는 김 대장의 핵심 동력이었다. 그는 하체 힘만으로 오를 수 없는 지형에는 손수 개발한 등강기를 활용했다. 특수 제작한 장갑을 끼고 등강기를 로프에 장착한 뒤 팔힘으로 암벽을 올랐다. 그는 고산 등반을 위해 스키를 배웠는데 장애를 갖기 전인 1989년 동계 전국체전 노르딕에서 2위, 1991년엔 바이애슬론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광주=임동률 기자 exi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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