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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예술이 된 뮤지엄, 건축가의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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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루브르박물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오늘날의 뮤지엄은 건축이 아니라 예술이다. 밋밋한 건물들 틈에서 마치 거대한 조각품처럼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공간 속의 오브제를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그 자체가 예술작품인 뮤지엄은 건축가의 끼와 능력이 가장 많이 발현되는 건축물이다. 잘 지은 뮤지엄은 당대의 역사와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투영한다.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대중과의 소통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갖췄다. 스페인의 쇠퇴한 공업도시 빌바오를 보라. 구겐하임 미술관 덕분에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건축가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위대한 유산으로 남은 경우는 이 밖에도 수없이 많다.

뮤지엄 건축은 우선 ‘빛과 동선’이라는 화두를 베게 삼아 설계 과정에서 수많은 요소를 염두에 둬야 한다. 주변의 경관과 풍토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재질, 용도 등이 그것이다. 동선을 분배하는 입구 홀의 유형, 자연채광 방식, 동선에 적용된 건축적 산책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하게 분석하는 작업도 생략하면 안 된다.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보면 뮤지엄 건축은 까다롭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지만, 건축 대가들은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대중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뮤지엄, 공간의 탐구》의 저자는 근대 뮤지엄 건축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 중심의 관점에서 뮤지엄 건축의 역사를 통찰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 중심의 관점과 건축 의뢰인의 취향을 무시한 것도 아니다. 이들의 도전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은 8인의 건축가를 추가로 조명함으로써 현대 뮤지엄 건축에 녹아 있는 철학과 의미를 심도있게 파헤친다. 오랫동안 건축 역사와 이론을 두루 섭렵한 저자가 곁들인 460여 장의 풍부한 사진과 도면은 작가들의 작품 속에 흐르는 미세한 숨결과 공통의 DNA, 독창성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요긴하다.

20세기 초만 해도 고전성에 파묻힌 뮤지엄은 게으르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1909년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뮤지엄을 ‘파괴해야 할 공동묘지’로 묘사했다. 프랑스 시인 장 콕도는 루브르박물관을 ‘시체보관소’라며 조롱했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을 뚫기 위해 거장들은 더 강렬한 실험정신을 들고 나왔다. 납작하고 기하학적인 외관과 철근 및 콘크리트 재료, 근대적인 공간성을 밀어붙였다.

현대로 넘어와 창의력이 더해진 뮤지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기에 이르렀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을 건축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성을 강조했고, 르 코르뷔지에는 무한 성장 박물관 개념을 적용해 찬디가르미술관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한 강철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 고전주의를 대담하게 활용한 제임스 스털링, 일본의 정신과 자연관을 노출 콘크리트로 구현한 모더니즘의 계승자 안도 다다오, 기술과 전통의 조화를 추구한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 노먼 포스터 등이 다양한 건축기법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의 종묘에 매료된 친한파 프랭크 게리는 대중적인 공간성을 추구하며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과 루이비통 건물을 통해 친화력과 완결성을 드높였다. 물론 이들이 뮤지엄만을 건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세계 수많은 뮤지엄은 당대 건축가들의 예술적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의 한 주체로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주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뮤지엄 산과 더불어 서울 이태원의 삼성 리움미술관을 보기 드문 역작으로 꼽을 만하다. 리움미술관은 해외 유명 건축가 3인의 공동작품으로, 건물들은 각각의 개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조화를 이뤄 전시물들과 함께 볼거리를 제공한다.

최근 정부는 고(故)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2만3000여 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전시할 뮤지엄을 건립하기로 했다. 뮤지엄이 유물의 보존이라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 ‘공간을 담은 예술’로서 승화된 터라 자못 기대가 크다. 도시와 풍경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건축 담론 이상의 그 무엇이 실현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이 책으로 인해 더욱 간절해진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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