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은 어떻게 정해질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림은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다. 싼 그림은 그렇게 주목받을 일이 없지만, 고가의 그림은 이슈나 뉴스로 접하면서 은연중에 ‘그림은 비싸다’는 생각이 각인되는 것 같다. 실상은 생각보다 싼 그림이 훨씬 더 많다. 안타깝게도.
그림값은 집값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집은 번듯하더라도 외딴곳에 지어져 있으면 쌀 것이고, 오래되고 볼품없어도 강남 요지에 있으면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강남인데 집까지 좋으면 부르는 게 값일 테고. 그림값도 같은 원리다.
그림의 시작은 어느 화가나 상관없이 한 줌의 물감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물감이 화가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림으로 재탄생됐을 때는, 그저 그런 벽걸이에 그칠 수도 있고 찬란한 왕관을 쓸 수도 있는 것인데, 다시 집과 비교하면 물감은 시멘트나 철근 같은 재료에 해당되고, 화가의 역량과 인지도는 집 짓는 장소가 되는 셈이다. 오랫동안 역량이 누적되고 검증이 된 대가급의 그림은 곧 강남이라는 곳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결국은 한 줌의 물감으로 같이 시작은 하지만 인지도에 의해 다르게 끝나는 게 그림값이다. 그림 쪽만 그렇겠냐만 일단 기본은 그렇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림의 수준도 천차만별이고 그림값 역시 그렇지만, 그림을 선택하는 사람들 또한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오래전에 이경규 씨가 진행했던 TV 예능,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는 ‘사랑의 작대기’처럼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춰 수많은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이다. 벽지를 대신할 만큼의 적은 돈으로 편하게 그림을 사서 걸 수도 있고, 집 몇 채 가격을 들여서라도 그 그림은 꼭 사고 싶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모범답안 같은 건 없다. 벽지 같은 그림을 고른 작대기가 그 선택으로 훗날 대박이 날지, 수억원을 들인 작대기가 벽을 치며 후회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그런 변수보다는 길게 줄을 선 집이 으레 맛집이듯, 작대기가 많이 집중되는 그림이 비싸고 인기도 높으며 가치 또한 공고해지는 경향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사실 그림값은 취미의 문제인 애호가보다는 생업의 문제인 화가에게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무명이면 당연히 말단 회사원 같은 기분이 들 거고. 하지만 강남이나 여의도도 처음엔 땅콩 농사를 짓던 모래밭이었듯이, 그림값의 영향을 받지 않는 대가도 처음엔 무명이었고 다 그런 고난의 시절을 거쳤을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지치지 않고 부지런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구름이 걷히고 바로 길 너머가 ‘강남’일 수도 있다.
세상이 넓은 만큼 그림도 많고 ‘사랑의 작대기’ 또한 그에 못지않게 많다. 이 순간에도 사랑의 작대기는 더 나은 그림을 고르기 위해 여전히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준비만 잘하고 있으면 내일은 당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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