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승절(7월 27일) 67주년을 맞아 군 지휘관 주요 성원들에게 ‘백두산 권총’을 하사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지난해 이즈음 우리 언론들은 노동신문 보도를 인용해 북한 지도부의 동향을 이렇게 전했다. 문장 안에는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띈다.
‘이른바’는 ‘남들이 그리 말하더라’라는 뜻 더해
그중에서도 ‘전승절’은 이 문맥에서 부적절한 표현이다. 왜 그럴까? 나의 관점이 아니라 남의 관점이 투영된 말이기 때문이다.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그것을 우리는 ‘정전기념일’이라고 한다. 남침을 감행해 전쟁의 참상을 불러온 북한에서는 이를 미화하고 자화자찬해 스스로 ‘전승절’이라고 부른다.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관점(point of view)’이라고 한다.특히 신문언어는 공공언어라 이 ‘관점’을 매우 중요시한다. ‘전승절’은 북한의 관점이 반영된, 북한의 용어임이 드러난다. 이를 그대로 인용해 쓰면 본의 아니게 타인의 표현이 나의 말로 둔갑해 전달되는 오류가 발생한다.
이를 피하려면 ‘소위’ ‘이른바’ 같은 말을 넣어 남의 용어임을 나타내면 된다. ‘이른바’는 ‘세상에서 말하는 바’란 뜻이다. 즉 ‘이른바 전승절(7월 27일) 67주년을 맞아~’ 식으로 써서 그 말이 북한의 용어임을 밝히는 것이다. 문장론적 기법인 셈이다.
지난 호에서 살핀 ‘기념’의 쓰임새 역시 문장 성패를 가르는 수많은 단어 용법 중 하나다. 요지는 6·25전쟁, 국권피탈, 천안함 피격사건 등은 우리가 ‘기념’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남침을 또는 격침을 감행한 북한 측에서 쓰는 말이 ‘기념’이 될 것이다. 1910년 우리 국권을 강탈해간 일제 역시 당시 사건을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타인의 관점에서 쓰는, 타인의 용어인 셈이다. 단어 용법 가운데 ‘누구의 말인가’, 즉 그 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언어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쓰는 여러 기법 중 하나다. 이를 통해 내가 중심이 되는, 주체적 관점의 용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한국전쟁’보다 ‘6·25전쟁’이 좀 더 주체적 용어
우리가 평소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용어들이 실은 개념적으로 불투명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2004년 4월 교육부에서 고시한 교과서 편수용어(근현대사 용어 통일)도 그런 혼란을 없애기 위해 나왔다.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6·25전쟁, 한국전쟁, 6·25사변, 6·25동란….’ 혼용되는 이들 용어 중 교육부는 자국사적 관점의 용어인 ‘6·25전쟁’ 하나만 교과서 용어로 고시했다. ‘한국전쟁’은 제삼자의 시각에서 칭하는 말이란 점에서, ‘6·25사변’ 또는 ‘~동란’은 사실을 왜곡하는 역사관이 투영된 표현이란 점에서 버렸다.
‘8·15 광복’과 ‘8·15 해방’도 흔히 혼용하지만, ‘해방’은 수동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버리고 ‘8·15 광복’으로 통일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또는 ‘광주항쟁’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런 말보다 민주화 운동의 의미 부여를 위해 특정 지역을 한정하지 않은 ‘5·18 민주화운동’으로 통일해 쓰기로 했다.
‘4·19혁명’과 ‘4·19의거’ 중 무엇을 써야 할지 헷갈리는 이들은 정부에서 ‘4·19혁명’으로 통일해 쓰기로 했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민주주의 발전의 획기적 계기라는 의미에서 이 용어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