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 운영 허가를 담당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9일 신한울 1호기(사진) 가동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폭발과 방사능 유출 가능성을 최소화할 모든 조치를 확보하라는 주문과 함께다. 탈원전을 고수해 온 정부 정책이 완화될 신호탄이라는 분석과 이미 준공된 원전에 대한 가동 허가인 만큼 근본적 기조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엇갈린다.
8시간 격론 끝에 가동 승인
원안위는 이날 오후 1시부터 8시간 넘게 이어진 제142회 정례회의에서 신한울 1호기 가동을 최종 승인했다. 이에 따라 신한울 1호기는 곧바로 연료 장전과 시운전 등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실제 가동은 일러야 내년 3월께나 돼서야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허가 조건을 충족하려면 추가 안전 검증 작업 등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원전은 24기 가운데 16기가 가동되고 있고, 8기가 정비 중이다. 신한울 1호기가 실제 가동을 시작할 경우 국내 가동 원전은 총 25기로 늘어나게 된다.신한울 1호기는 경북 울진에 지은 발전용량 1400㎿급 한국형 원전으로 작년 4월 완공됐다. 공사가 시작된 것은 2010년 4월이다. 2018년 4월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경주·포항 지진 사태 이후 지진 위험성을 반영한 부지 안전성을 평가해야 한다는 이유로 심의가 계속 미뤄졌다. 최근엔 수소 폭발 등의 중대사고를 막는 피동형수소제거기(PAR) 불량 여부가 쟁점이 됐다. 그러나 이를 명확히 해소해야 한다는 조건이 찬반 양측의 입장을 좁히면서 가동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날 원안위 회의는 일부 위원들이 신한울 1호기의 기술적 불완전성을 거론하면서 시작부터 격론이 오갔다. 한국형 원전 설계를 담당했던 원자력연구원 엔지니어 출신인 이병령 위원은 “원전 사고는 한 번 일어나면 나라의 기둥이 통째로 흔들린다”며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비관론적 시각으로 거듭된 검증을 해야 원전의 안전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결되지 않은 안전 문제가 너무 많아 (가동을) 반대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수조원의 자산이 사장되는 걸 막기 위해 조건부 찬성하겠다”고 말했다.
캐나다 원자력공사에서 근무한 환경운동연합 출신인 하정구 위원은 화재 위험에 대한 PSA(확률적 안전성 평가)가 미흡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김호철 법무법인 유한 변호사는 원안위원 중 유일하게 ‘명시적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여당 내 기류 변화가 승인 이어져
최근 여당 내부에서도 정부의 탈원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 원안위의 신한울 1호기 가동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이 신호탄이라는 얘기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국회에서 “이미 완성단계에 있는 원전을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묵히는 문제는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신한울 1호기 가동 승인으로 당장 신한울 3·4호기와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2017년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한 신한울 3·4호기는 같은 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사계획 인가를 얻지 못했다. 신고리 5·6호기는 중대재해법 도입 여파로 공사가 중단됐고, 공사 재개 여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이번 신한울 1호기 조건부 가동 허가의 의미가 제한적이며, 정부의 정책적 변화를 가늠할 진짜 시험대는 신고리 5·6호기 인가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이미 준공된 신한울 1호기와 나머지 원전은 상황이 다르다”며 “다음 정권에서 공사 여부를 결정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신한울 1호기 운영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매달 450억원 이상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신한울 1호기 연간 발전량은 899만8535㎿h, 발전 수익은 연간 5400억원으로 추산된다. 신한울 1·2호기 시운전 담당 인력은 지난해 기준 382명, 이들의 인건비는 연간 366억원이다.
이지훈/이해성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