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개발은 항공역학, 전자공항, 유체역학, 신소재 분야 등 다양한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야 가능한 고차원 영역이라는 점에서 수리온의 의미가 크다. 하지만 수리온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방위사업청과 KAI 사이의 개발 비용과 관련한 복잡한 소송도 그중 하나다.
방사청, “부당益, 대금에서 제외”
출발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사청은 30년 이상 운용해 노후한 헬기를 대체하고, 한국형 헬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2005년 12월부터 ‘한국형 헬기 개발사업’을 추진했다. 국내외 협력업체, 기술개발업체, 종합업체 등 30개의 개발 업체를 선정했다.KAI는 이 중 종합업체로 선정돼 협력업체 21곳과 하도급 계약을 맺고 기술 개발부터 제조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방사청은 개발 단계에 투입된 비용의 일부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수리온을 양산할 때 이자와 함께 ‘개발투자 및 기술이전 보상금’으로 주기로 KAI와 계약을 맺었다.
KAI는 이 과정에서 방사청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협력업체에 전달해주는 역할도 맡았다. 문제는 감사원이 이에 대한 KAI의 업무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불거졌다. 감사원은 “KAI가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개발투자금과 기술이전비를 재료비와 기술료 등으로 제조원가에 포함시켜 원가계산서를 꾸몄다”는 감사 결과를 2015년 9월 내놨다. 그러면서 “KAI가 협력업체에 지급돼야 할 보상금 총 547억원을 부당하게 챙겼다”고 밝혔다.
방사청은 이를 근거로 KAI에 줘야 할 물품대금 373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부당이익금을 물품대금에서 반환받겠다’는 의미였다. 그 근거로 물품구매계약서 제28조를 들었다. 계약서 28조의 내용은 “원가가 계산 착오나 공무원의 잘못으로 높게 책정된 경우 부당이익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KAI가 협력업체에 보상금을 전달하면서 그 비용을 원가계산서에 넣었기 때문에 이는 ‘계산의 착오’에 해당한다”는 게 방사청의 주장이었다.
태평양 “감사원 지적, 위법사항 아냐”
이에 대해 KAI는 “양산 과정에 들어간 물품대금을 지급하라”며 방사청을 상대로 소송을 청구했다. 청구금액은 총 373억원. 2016년 시작한 물품대금 청구 소송은 지난 4월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졌다.결과는 1심부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KAI의 완승이었다. KAI 측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은 재판 초반부터 “KAI가 작성한 원가계산서는 ‘방산물자의 원가계산에 관한 규칙’에 따른 적법한 계산서였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의 감사 내용 자체는 인정하지만, 부당이익은 아니라는 얘기다.
태평양은 방산물자의 원가계산에 관한 규칙의 내용, 개발투자금 및 기술이전비 보상에 관한 합의서의 내용과 체계, KAI와 방위사업청 및 협력업체 사이의 계약 구조, 정부투자금과의 관계 등을 면밀히 분석했다. 태평양은 이를 바탕으로 “개발투자금 및 기술이전 보상비를 제조원가에 포함시키는 게 타당하다”며 재판부를 설득했다.
특히 법리 싸움이 치열했던 쟁점은 개발투자 및 기술이전 보상금이 확정된 금액인지, 아닌지를 다투는 부분이었다. 방사청은 “합의서에 따르면 보상금은 원금에 이자를 더한 금액으로 확정된 금액”이라며 “합의서에서 개발투자 및 기술이전비 보상금을 연구개발비, 기술료로 처리한 것은 지급 명목을 기재한 것일 뿐, 이를 다시 제조원가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태평양 측은 합의서를 작성하기까지의 경위 등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확정된 금액은 KAI가 다른 개발업체에 지급할 보상비일 뿐, 보상금을 제조원가에 포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방사청이 KAI에 물품대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며 KAI의 손을 들어줬다. 방사청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까지 사건을 가지고 갔으나,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 모두 KAI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의 승소를 이끈 주인공들은 태평양의 송우철, 박상현, 설광윤, 이덕우, 용진혁 변호사다. 서울행정법원 판사 경력이 있는 박상현 변호사가 사건의 실무를 이끌었다. 태평양 측은 “이 사건 자체에 걸려 있는 소송금액도 매우 컸다”며 “KAI가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금액이 230억원 정도 남아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