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길이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이달부터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대폭 강화된 데 이어 주요 은행들도 대출 한도를 줄이고 일부 대출 판매를 중단하는등 잇달아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연내 금리 인상을 앞두고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강화된 결과다. 금리 상승 리스크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사람들이 저축은행, 보험사 등 제2금융권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게 됐다.
4일 은행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오는 6일부터 개인 신용대출의 최고 한도를 기존 2억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하향 조정한다. '신나는직장인대출'과 전문직대출 등 고소득자와 전문직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 한도가 그만큼 줄어든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중순부터 우량 신용대출 우대금리를 0.2%포인트 축소한 데 이어 이번에는 대출 한도를 아예 낮췄다.
농협은행은 앞서 지난달 15일부터 주택담보대출 한도도 최대 5000만원 축소했다. 서울보증보험과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MCI·MCG 대출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하면서다. MCI·MCG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동시에 가입하는 일종의 보험이다. 소비자는 보험료를 내고 최우선 변제금액만큼 더 대출받을 수 있다. 최우선 변제금액은 지역별로 서울 5000만원, 용인·화성·김포·세종 4300만원 등이다.
대출 고삐를 죄는 것은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30일부터 솔져론, 관리비대출 등 신용대출 4개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14일부터 5개 신용대출 상품의 금리 우대 혜택을 0.1~0.5%포인트 축소한 데 이어 이달 12일부터는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실적 기준을 상향할 예정이다. 그만큼 우대 대상이 줄어든다.
은행들이 이처럼 대출 죄기에 나선 것은 강화된 총량 규제 때문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여파로 급증한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5~6% 내외로, 내년 중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4%대로 낮출 것을 금융권에 주문했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7.9%였다. 은행들은 목표치에 맞추기 위해 매달 대출 총량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은 더 강해졌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일 시중은행장과 만나 "불요불급한 가계대출 취급을 최소화해달라"고 당부했다.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은 2일 "버블이 끝없이 팽창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라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 환경이 변화해갈 것이라는 예상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이제 금리상승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방침에 따라 이달부터는 DSR 규제도 대폭 강화됐다. 규제지역에서 6억원이 넘는 집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이미 받은 대출을 합쳐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으면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들 수 있고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모두 끌어쓰는 '영끌' 대출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은행 대출길이 좁아지면서 어떻게든 대출을 받으려는 실수요자는 저축은행·카드론 등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2금융권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금융권의 개인별 DSR 한도는 60%로 은행(40%)보다 높아 추가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다시 저소득·저신용자의 연쇄 대출 제한으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은행 대출을 받던 사람들이 2금융권으로 향하면 기존에 2금융을 이용하던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