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중심으로 수년째 논란이 분분했던 ‘디지털세(稅)’가 2023년부터 실제 과세될 전망이다. 한국이 포함된 139개국 협의체에서 130개국이 합의한 내용은 크게 봐서 두 가지다. 글로벌 대기업이 고정된 사업장 유무와 관계없이 매출(이익)을 낸 국가에 법인세 일부를 내게 하는 것과 최저한세율을 15%로 못 박은 것이다.
애초 디지털세는 구글·페이스북 등을 겨냥한 것이었다. IT 기반으로 여러 나라에서 수익을 내면서도 세금은 본사가 있는 본국에만 내거나, 조세피난처에 서류상 회사를 두고 세금을 회피한다는 문제가 유럽에서 제기돼왔다. 2018년 EU 차원의 디지털 세제안이 나왔고, 영국은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다. 몇 년 새 이렇게 많은 나라가 동참한 것을 보면 놀라운 속도다. 신중하게 움직이는 조세분야까지 변화와 글로벌화는 이처럼 빠르다.
이번 합의는 디지털세 과세 원칙과 일정 정도다. 한국 기업들의 이익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후속 협의에서도 정부가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귀속국의 매출기준, 분쟁·구제절차 등 신경 써야 할 ‘디테일의 악마’는 이런 데도 얼마든지 있다. 당장은 삼성전자가 과세 대상으로 확실시되고, SK하이닉스 정도가 경계선에 있다. 하지만 200억유로로 시작하는 과세대상 매출기준이 100억유로로 축소되면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으로 대상 기업이 상당히 늘어날 수도 있다. 세수(稅收) 변화도 정부가 유의할 대목이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과세권이 생기면서 우선은 세수가 늘어날 수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선 어떻게 될지 모른다.
보다 중요한 것은 본격적 ‘조세의 국제화’에 대한 적극 대응이다. G7의 법인세 최저세율 15% 합의가 불과 한 달 전이다. 그 연장선에서 디지털세 시행이 확정됐다. ‘조세권은 주권국가의 기본’이란 원리가 흔들리게 됐다. ‘지난 100년간 지속된 국제조세 원칙의 대변경’이라는 기획재정부 평가가 과장이 아니다.
이런 거대한 변화에 부응할 만큼 한국 조세제도와 징세행정은 합리적이며 지속가능한가. 고율의 법인세나 납세자가 편중된 소득세, 기형적 상속세만이 문제가 아니다. ‘약탈수준’이라는 양도세와 세율이 아니라 ‘납세자의 2%’로 갈라치기 하려는 종합부동산세 같은 징벌형 부동산 세금도 국제 흐름과는 딴판이다. 이 모든 게 국제 비교되며 간섭받을 것이다. 그래도 ‘내정 참견’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신(新)국제질서가 다가온다.
기재부와 국회는 정신 바짝 차리고 조세질서의 국제적 메가트렌드를 주시하며 공부해야 한다. 세제실과 국세청만이 아니다. 지방세제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와 시·도급 지자체도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세 후속 논의는 물론 다른 국제조세 협상·협정에서 어리둥절 따라다니기만 하다가는 과세권을 외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 나라 밖에선 기업 보호도 못 하면서 국내에선 쥐어박기만 하는 ‘방구석 여포 정부’는 곤란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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