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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수록 적자, 안 팔아"…보험사들, 실손보험 '손절'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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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출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생명보험사들이 더는 실손보험을 팔지 않겠다는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리고 있다. 높은 손해율로 팔수록 손해인 적자 구조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실손보험을 주력 상품으로 삼고 있는 손해보험사들도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미 손실 규모는 극에 달한 상황인데, 4세대 실손보험 출시로 적자 구조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도 낮아서다.

일각에서는 생보사는 물론 손보사까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결국 '과도한 의료 이용'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잡지 못하면 실손보험 존립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실손보험 파는 생보사 6곳 남아…ABL생명도 단종 논의
25일 업계에 따르면 동양생명이 다음 달 1일부터 도입되는 4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앞서 올해 3월 미래에셋생명이 실손보험 판매 중단을 발표했는데, 4달도 채 되지 않아 동양생명이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로써 동양생명은 기존 상품인 3세대 실손보험을 이달까지 판매하고, 실손보험 판매 자체를 중단한다. 기존 실손보험 가입 고객이 전환을 원하는 경우에 한해 4세대 실손보험 상품을 제공한다.

동양생명이 실손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은 높은 손해율로 적자를 면치 못하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동양생명의 지난해 실손 합산비율(발생손해액+실제사업비/보험료수익)은 112%으로 집계됐다. 이는 보험사가 고객으로부터 보험료 100만원을 받아서 보험금 지급과 사업비 등에만 112만원을 썼단 얘기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일단 손해율이 너무 높고, 계약 보유량도 16만건으로 많지 않아서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며 "적자가 워낙 심하다 보니 손해율 관리 차원에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ABL생명도 실손보험 판매 여부를 검토 중이다. ABL생명의 경우 지난해 실손보험 보유계약이 10만건으로 낮은데, 실손 합산비율은 132.2%로 실손보험 판매 생보사 중 가장 높은 부담을 지니고 있다. ABL생명이 4세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할 수 있다는 데 힘이 실리는 이유다.

만약 ABL생명이 실손보험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결정할 경우 국내 생명보험사 17곳 가운데 실손을 판매하는 곳은 5곳으로 대폭 축소된다. 현재 4세대 실손 출시를 결정한 곳은 삼성·한화·교보·흥국·NH농협생명뿐이다.

앞서 라이나생명이 2011년 실손보험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린 뒤 오렌지라이프가 2012년, AIA생명이 2014년 상품을 팔지 않기로 했다. 2017~2019년에는 푸본현대생명, KDB생명, KB생명, DGB생명, DB생명 등이 연달아 판매를 중단했다. 지난해 말에는 신한생명이 실손보험 판매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생보사가 현시점에서 계속해서 손실을 봐야 하는 실손보험을 가지고 있을 요인이 부족하다"며 "주력 상품도 아니고 비중도 전체 실손보험 계약 중 20%에 불과해 실적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앞으로도 포트폴리오 조정 과정에서 실손보험을 포기하는 생보사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적자로 손보사도 '울상'…판매 중단 확산 우려
국내 생보사가 잇따라 실손보험 출시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손보사 업계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손실 규모는 극에 달한 상황인데, 4세대 실손보험 출시로 적자 구조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은 자취를 감춰서다.

손해보험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지급보험금과 손해조사비, 지급준비금 증감 등을 합친 발생손해액은 지난해 1분기 대비 6.7% 늘어난 2조7290억원을 기록했다. 보험료 인상으로 사업운영비를 뺀 금액인 위험보험료가 지난해 1분기보다 10.4% 많은 2조573억원으로 집계됐으나, 보험료 지급 정량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보험료 인상에도 적자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단 의미다.

이에 올해 1분기 실손보험은 6866억원 적자를 냈다. 위험손해율은 132.6%을 기록했다. 사업운영비까지 포함한 영업보험료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영업손해율은 올해 1분기 120∼123%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보험사가 고객으로부터 보험료 100만원을 받아서 보험금 지급에만 120만원 이상 지급했단 얘기다.

도수치료 등 비급여 항목 의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가 최대 4배까지 비싸지는 '4세대 실손보험' 도입에도 업계 반응은 회의적이다. 4세대 실손보험에 따른 보험료 할증 등의 내용이 3년 이후에야 적용되고, 실손보험 손해율을 높이는 요인인 기존 1세대·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 3500만명이 4세대로 갈아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이유다.

4세대 실손보험이 제대로 정착된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손해율이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당국은 적자 구조 개선을 위해 2017년 신손실보험인 '착한실손'을 내놨지만, 출시 3년 만에 손해율이 100%를 넘어서자 4세대 실손보험 도입에 속도를 낸 바 있다. 상품 구조만 약간 바꿔 내놓는 0세대 실손보험으로는 보험사의 손실도, 소비자의 부담도 해소할 수 없단 게 증명된 셈이다.

일부 가입자의 '과도한 의료 이용'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실손보험 존립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미 생보업계는 물론 손보업계에서도 실손보험 판매 중단 현상이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태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4세대 실손보험이 당장 다음 달부터 판매되지만, 이 조치가 적자 구조를 해결해줄 것이라 보는 보험사는 사실상 없다"며 "손보사 중에서도 손실 규모가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중소형 보험사들이 있는 만큼, 생보사에서 시작된 판매 중단 현상이 손보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손해보험연구실장은 "실손보험의 적자 구조에서 가장 핵심 문제는 비급여 진료 관리 체계 미흡"이라며 "매년 적자가 쌓이는 구조의 상품을 견딜 수 있는 보험사는 많지 않다. 과도한 의료 이용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실손보험 상품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단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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