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은 50만표 내외로 승패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부산에서 100만표 이상 지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나"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제 완화를 논의한 지난 18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나온 당 부동산특별위원회의 입장이다. 부동산 관련 세제를 조금이라도 완화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절박감이 묻어난다.
계량화할 수 없지만 세금은 선거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끼쳐왔다. 종부세와 같은 새로운 세목의 신설은 집권세력의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지며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연금이나 담배값 등 준조세도 비슷한 효과를 미쳤다.
선거 앞둔 증세는 필패로
선거만 놓고 보면 종부세는 여당에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2005년 제정한 종부세에 '세금폭탄' 프레임이 씌워지며 이후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을 발목잡았기 때문이다.당장 종부세 제정 이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참패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중 12석을 차지하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67%에 달하는 선거구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등 압승했다.
이를 시작으로 2007년 대통령선거와 2008년 국회의원 총선거까지 열린우리당과 이를 승계한 대통합민주신당 등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5년 담뱃값 인상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여론 악화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담배소비세를 인상해 담배가격을 기존 2500원에서 4500원까지 끌어 올렸다.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서민증세 논란에 휩싸이며 거센 조세저항에 부딪혔다.
2016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참패한 것은 담뱃값 인상에 대한 민심 악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당의 압승은 이후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에서 국정동력을 더욱 빠르게 떨어뜨렸다.
세금 올린 세력에 대한 분노는 동서고금 막론
'증세 필패'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민주화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77년 도입한 부가가치세다.부가세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통틀어 한국이 가장 일찍 도입한 나라 중 하나다. 모든 상품 및 서비스 거래가격에 10%의 세금이 부과되면서 세금 부담은 물론 물가까지 올리는 효과가 있다. "유신 독재시절이 아니었다면 도입하지 못했을 세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유신독재로 선거는 없었지만 부가세 도입은 박정희 정부 퇴진 투쟁에 불을 붙인 도화선 중 하나로 거론된다. 1979년 벌어진 부마민주항쟁에서 '부가가치세 철폐' 구호가 나온 것이 단적인 예다.
봉건군주의 고유 권한이던 조세 결정권을 의회로 귀속시킨 1688년 영국 명예혁명 이후 세금은 정치적인 문제였다. 홍차에 부과한 세금으로 촉발된 미국 독립전쟁에서 보듯 세금은 정치 흐름의 변곡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선보다는 지방선거, 총선이 더 걱정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들은 종부세 고지서가 날아드는 12월을 세금 관련 여론의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세제를 오랫동안 담당해 온 정부 부처 관계자는 "종부세 도입 당시를 생각하면 고지서가 날아든 순간 납세자의 눈이 돌아가고, 여당은 도저히 찍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내년 3월 대선이 치러진 뒤 2개월 뒤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종부세 부과 대상 주택이 집중된 서울과 수도권의 지자체장이 무더기로 야당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집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아파트의 25% 정도가 종부세 대상이다. 올해 종부세 부과 대상자는 대략 85만명으로 추산된다. 식구들의 표까지 감안하면 종부세는 200만표 가까이 움직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이는 2024년 총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민주당 내에서도 수도권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개정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여당이 압승한 작년 총선에서도 서울은 5개 선거구, 경기도는 7개 선거구에서 5% 이내 차이로 당락이 결정됐다. 서울 중구에 지역구를 둔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의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은 세금을 낼 때, 국가의 존재를 피부로 느낀다. 지금처럼 조세제도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한다고 받아들여진다면 지지에 대한 철회는 불보듯 뻔하다."
다만 종부세 완화가 1주택자에 한정된만큼 종부세가 완화되더라도 대상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종부세 부과 대상 1주택자는 16만명으로 절반은 종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며 나머지는 납부 세액이 줄어든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종부세를 상위 2%에게만 부과한다고 하더라도 집을 사면 세금을 많이 낸다는 두려움을 씻어내기엔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김소현/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