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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하 이사장 "목숨 건 국제구호 30년…이젠 유산기부 펼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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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8명이 시작한 조그만 단체가 지금은 59만 명의 후원을 통해 47개국에 나눠주는 국제 구호단체가 됐습니다. ‘한 달에 만원’이라는 구호의 힘으로 지금까지 1억 명을 도왔습니다.”

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사진)은 한국 비영리기구(NGO)계의 대부로 불린다. 국제구호 사업에 종사한 경력만 48년. 시민들의 힘으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한국을 바꿔보기 위해 설립한 굿네이버스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4년 르완다 내전,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등의 사태에서도 이 이사장은 구호 현장을 지휘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이 이사장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때론 목숨을 걸어야 했던 적도 많았다”며 “시민들의 아낌없는 후원으로 30년을 달려왔다”고 말했다. 1991년 ‘한국이웃사랑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굿네이버스는 국내 대표적인 토종 NGO다. 월드비전의 한국지부에서 18년을 몸담았던 이 이사장이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올라가면서 해외 구호단체들이 한국에서 서서히 떠날 무렵이었다.

이 이사장은 “한국도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원조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면서 토종 NGO 설립을 결심했다”며 “첫 번째 후원자를 모집하기 위해 2만 명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냈는데 200명에게 후원 신청 답변이 왔을 땐 뛸 듯이 기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활동하면서 목숨을 걸어야 했던 적도 많았다. 창립 초기인 1994년 르완다 내전이 벌어지자 이 이사장은 난민을 돕기 위해 르완다 국경 인근 고마지역으로 날아갔다. 난민촌 지역은 콜레라가 창궐해 불도저로 시체를 옮겨야 할 지경이었다. 이 이사장 자신도 폐렴에 걸려 생사의 위기를 넘겼다. 1997년 민간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 사업을 전개하면서 평양으로 갔을 때는 북한당국이 ‘김일성 동상’ 앞에 참배할 것을 요구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 이사장이 이를 거절해 1시간 동안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굿네이버스는 한국가이드스타가 평가한 공익법인 투명성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이 이사장은 “NGO의 ‘투명함’은 단체의 지속성과 연결된다”며 “내부 사업 모니터링과 평가를 더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이사장의 다음 목표는 고령사회를 맞은 한국에서 ‘황혼 기부’를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다. 현재 후원회원 중 20%가 55세 이상인 만큼 유산기부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이사장은 “1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대상으로 유산기부 운동을 전개하겠다”며 “후원자를 위한 시니어 공동체 타운 조성 및 서비스를 지원해 자원봉사 네트워크 조직 등의 사업을 펼쳐갈 것”이라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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