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한동안 잠잠했던 사모펀드(PEF)운용사들의 클럽딜(복수의 운용사가 모여서 투자하는 거래)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초대형 인수합병(M&A)이 재개된다는 기대감도 크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글로벌 PEF들의 연합전선 구축지난 14일 글로벌 PEF 운용사 블랙스톤(Blackstone)은 테크 기업 투자의 강자인 비스타에쿼티(Vista Equity)와 함께 미국 고등교육 기술 솔루션 제공 업체인 엘루시안(Ellucian)을 공동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인수 조건을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선 엘루시안의 기업가치를 약 50억 달러(약 5조 6000억원)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이달 초 블랙스톤, 칼라일(Calyle), 헬먼앤프리드먼(Hellman & Friedman)등 3곳의 PEF가 뭉쳐 화제가 된 미국 의료용품 업체 340억 달러 규모의 메드라인(Medline) 인수와 CDP에쿼티, 블랙스톤인프라펀드, 맥쿼리가 함께 한 93억 유로 규모의 이탈리아 도로 운영업체 인수 건에 이은 대형 클럽딜 사례다. 업계의 선두 주자인 블랙스톤을 중심으로 지난해 수십조원의 대형 펀드를 조성한 글로벌 운용사들이 손을 맞잡는 모양새다.
대형 인수 거래가 이어지면서 거래를 중개한 투자은행(IB)들은 화색이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마냥 긍정적이진 않다. PEF들의 클럽딜은 단일 운용사가 소화하기 어려운 대형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각각의 운용사가 갖고 있는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공유해 해당 기업의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내포한 부정적 의미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투자 전문지 인스티튜셔널인베스터에 따르면 2008년을 전후로 이뤄졌던 PEF클럽딜은 결과적으로 시장이 정점을 찍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시장 유동성이 확대되며 운용사들이 모아놓은 드라이파우더(Dry powder)는 늘었지만, 단일 기업에 대해 혼자 투자에 나서긴 꺼려지다보니 클럽딜에 나서게 됐다는 분석이다.
인스티튜셔널인베스터는 “2008년의 PEF 클럽딜은 현재의 밸류에이션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반증이며 시장에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보여주는 신호와 같았다”며 “몇몇 경우에 이는 파산으로 귀결됐다”고 지적했다.
◆ 거품 신호 vs 과거와 다르다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활성화됐던 PEF 클럽딜은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TPG캐피털·골드먼삭스가 힘을 합쳐 2007년 450억 달러의 거액을 들여 인수한 미국 전력·가스업체 에너지퓨처홀딩스(2014년 파산), 베인캐피털·KKR·보나도가 인수한 토이저러스(2017년 파산), 아폴로캐피털·TPG의 시저스엔터테인먼트(2014년 파산신청)등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 1호 PEF 클럽딜로 알려진 2007년 MBK파트너스와 맥쿼리, 미래에셋 컨소시엄의 케이블TV 사업자 C&M(현 딜라이브) 인수, 보고펀드(현 VIG파트너스)·KTB PE의 LG실트론 인수(현 SK실트론)는 국내 M&A 역사의 유명한 투자 실패 사례로 남아있다.
2008년 이후 결과가 좋지 않았던 PEF 클럽딜의 공통점은 기술 및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 부족, LBO방식에 따른 과도한 부채로 인한 재무적 부담 등으로 요약된다. 에너지퓨처홀딩스는 천연가스 가격 하락, 토이저러스는 온라인 쇼핑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렀다.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졌던 케이블TV 사업자 C&M은 인터넷TV(IPTV), 유튜브, 넷플릭스 등 새로운 기술·서비스의 등장으로 애물단지가 됐다.
10여년 전과 달리 최근 이뤄지고 있는 대형 M&A는 테크·바이오 분야에서 기술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후폭풍,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우려 등 거시 환경의 불확실성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PEF클럽딜이 거품의 신호일 수 있지만 운용사들의 역량과 경험도 그 사이 한 단계 높아진 상황”이라며 “기술 주도 기업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기업에 베팅한 결과는 과거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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