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이 됐지만, 저녁을 사먹을 돈이 없는 삶, 주말이 사라진 삶이 됐습니다.”
인천 남동공단 한 중소기업 직원은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로 바뀐 일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야간·휴일 근무수당을 못받아 월급이 100만원 가까이 줄자 자녀 학원비를 끊고 주말마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투잡족’이 됐다. 그는 “연봉이 센 대기업 근로자는 근무시간이 줄어도 상관없지만 기본급이 낮고 연장근로수당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다”고 한탄했다.
지난 16일 정부가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에 계도기간 부여 없이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하자 중소기업인 못지않게 근로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2018년 3000여 개 대기업과 지난해 1월 50인 이상 300인 미만 2만7000여 개 기업에 적용한 데 이어 내달 51만5494개 기업 553만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2059만 명)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거나 야간·휴일 작업이 많은 금형 주물 도금 단조 등 뿌리기업과 조선업체, 건설업체와 석회석 가공업체, 섬유 제조업체 등의 종사자 피해가 클 전망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계 협력사 임금은 주 52시간제 때문에 10년 전 수준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업종이나 기업 규모에 대한 차등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 임금 수준이 낮은 영세 중소기업일수록 근로시간은 생존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 “근로자가 더 일하고 싶다는 데 국가가 막는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계약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주 52시간제에 대해 2019년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 비중은 2009년 64%에서 2019년 59%로 줄어 10년간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더 벌어졌다.
중소기업계는 지난 15일 심야까지 정부에 읍소했지만 정부는 계도기간 없이 시행을 강행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를 의식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3%인 1710만 명의 중소기업 종사자보다 10%가량(조합원 200만 명)인 대기업 공장 근로자 중심의 강성 노동단체가 더 우선 순위에 있는 현실을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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