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단행된 검찰 고위 간부급 인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친(親)정부 성향’ 검사는 대거 승진한 반면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운 검사는 대부분 좌천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외압 사건의 피고인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승진해 서울고검장에 임명됐다. 역시 ‘친정부 검사’로 분류되는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을 맡게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좌천됐다.
‘친정부 검사’ 전면 배치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검사장급 이상 간부 41명에 대한 검찰 인사를 6월 11일자로 시행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김오수 검찰총장 취임 후 이뤄진 첫 검찰 인사인데, ‘친정부 검사를 위한 대폭 물갈이’로 풀이돼 검찰 내부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피고인 신분인 이성윤 지검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이 지검장은 재판을 앞두고 있는 만큼 법무연수원장 등에 임명돼 일선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결국 주요 고검장 자리를 꿰찼다.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은 이정수 검찰국장이 이끌게 됐다. 이 검찰국장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고등학교 후배(남강고)이기도 하다.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휴가 미복귀’ 사건 수사 과정에서 ‘뭉개기 의혹’을 받았던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수원고검장을 맡게 됐다.
역시 친정부 성향으로 꼽히는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수원지검장을 맡았다. 수원지검에는 문재인 정부에 민감한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수사가 걸려 있다. 그런 만큼 “김 전 차관 사건을 뭉개기 위한 방탄 인사”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 전 총장 징계 사태 때 앞장섰던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은 서울서부지검장을 맡았다. 추 장관 시절 법무부 대변인을 맡았던 구자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해 검찰국장 자리에 올랐다.
정권과 각 세운 고검장들 좌천
반면 현 정부와 각을 세운 검사는 대거 좌천됐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사건 심의 과정에서 제동을 걸었던 강남일 대전고검장과 구본선 광주고검장 등 사법연수원 23기 고검장은 전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밀려났다. 일선 고검장은 지난해 윤 전 총장에 대한 추 전 장관의 직무정지 명령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성명을 냈고,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입법 시도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한 전 총리 사건을 심의하는 자리에 대검 부장 외 고검장도 참석시키는 ‘카드’를 꺼내들었던 조남관 대검 차장은 법무연수원장으로 좌천됐다. 법무연수원장은 고검장급이긴 하지만 검찰 내 대표적인 한직으로 분류된다. 윤 전 총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발령났다.
전 채널A 기자 강요 미수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 검사장은 이번에도 수사 일선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한 검사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서 부산고검 차장으로, 다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잇따라 좌천된 바 있다. 이번 인사에서는 또다시 비(非)수사 보직인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임명됐다.
대검 공안부장이었다가 제주지검장으로 발령났던 박찬호 검사장 역시 중앙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광주지검장에 임명됐다. 대전지검에 걸려 있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의혹 사건’ 수사를 책임졌던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인천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고검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노골적 보복 및 보은 인사”
법무부 관계자는 “검찰 분위기 쇄신과 안정적인 검찰개혁 완수를 도모하고자 유능한 인재를 발탁했다”며 “그 과정에서 박 장관은 김 총장의 인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성윤 지검장은 피고인 신분인데 고검장으로 가는 것에 대해 이견은 없었는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개별 인사에 대해 드릴 말씀은 없다”고 답했다.검찰 안팎에선 “권력에 맞선 검사를 ‘타깃’으로 단행된 전형적 보복 인사이자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까지 친정부 검사를 챙기겠다는 노골적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범죄 혐의를 받고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이 지검장이 법무연수원장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때도 ‘말도 안 되는 인사’라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서울고검장이라니 기가 막힌다”며 “문재인 정부는 검찰을 망가뜨리기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정부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현직 검사는 “고위 간부가 친정부 인사로 채워질 것도 예측하고 있었고, 어차피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라 기대도 없다”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후배들도 조직에 대한 애정이 많이 식었다”고 토로했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김 총장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인사에 앞서 김 총장은 박 장관과 인사 방향 등에 있어 일부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검찰 내부에선 “김 총장이 한 검사장 등의 일선 복귀를 요청했으나, 박 장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남정민/안효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