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심해지는 ‘전세 품귀’
2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주(24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04% 올라 전주(0.03%)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3월 중순 이후 잦아드는 듯하던 전셋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반포동에서 대규모 재건축 이주가 예정된 서초구는 0.16% 올라 상승폭이 전주(0.07%)의 두 배를 넘었다.
신고가 전세 단지도 잇따르고 있다. 영등포구 ‘아크로타워스퀘어’ 전용 59㎡는 이달 8억230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지난달 거래됐던 기존 최고가(7억5000만원)보다 7300만원 비싸다. 동작구 ‘사당자이’ 전용 84㎡도 지난 25일 6억5000만원에 계약서를 쓰면서 직전 최고가(6억2000만원)를 뛰어넘었다.
고가 주택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달 들어서만 △용산구 나인원한남 전용 206㎡(58억원)와 한남더힐 233㎡(49억원)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 198㎡(33억원) △강남구 청담린든그로브 203㎡(32억5000만원) 등이 직전 거래가보다 최대 10억원 오른 가격에 전세 계약됐다.
새 임대차법이 전세시장에 기름을 부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집주인들이 신규 계약 때 전셋값을 크게 높여 받거나 전세 대신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며 “아예 ‘이번 기회에 들어가 살겠다’는 집주인도 많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달 26일 기준 서울 월세(반전세 포함) 매물은 1만6742건으로 한 달 전(1만5672건)보다 6.8%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세 매물은 2만2254건에서 2만1679건으로 2.6% 감소했다. 이로써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4%로 높아졌다. 올 들어서는 줄곧 40% 내외 수준이었다.
전셋값 오르자 매매가격까지 불안
국민은행 월간조사에 따르면 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이 시행된 지난해 7월 31일 이후 올 4월까지(2020년 8월~2021년 4월)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4735만원(2억5939만원→3억674만원) 올랐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3년여간 상승액 1698만원의 세 배에 달한다.폭등한 전세가는 매매 심리까지 자극하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 전문위원은 “지난해 전세가격이 너무 올라 이제 세입자들이 감당하기 힘들게 된 곳이 많다”며 “거주 불안이 커지자 서울을 벗어나 경기, 인천 등에서 전세를 끼고 내 집을 마련하는 젊은 층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주 경기도 집값은 0.32%, 인천은 0.43% 올라 서울 상승률(0.10%)을 크게 앞섰다.
전세가 월세(반전세 포함)로 바뀌는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는 총 12만6192건이다. 이 중 월세는 4만3425건으로 전체의 34.4%를 차지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전 9개월(2019년 11월~2020년 7월)간 월세 거래가 28.4%였던 것과 비교하면 월세 비중이 6.0%포인트 상승하고, 전세 비율은 그만큼 줄었다.
보유세 강화, 입주물량 감소 등 시장 불안 요인이 산적한 가운데 다음달 전·월세신고제까지 시행된다. 이 제도는 보증금 6000만원 또는 월세 30만원 이상의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 금액을 포함한 계약 사항을 30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전·월세 신고 내용은 언제든 과세 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며 “소득 노출을 꺼리는 집주인들이 월세마저 거둬들이면 임대차 시장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