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30·사진)이 지난 17일 막을 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바이런넬슨에서 25언더파 263타를 쳐 우승했다. 한국 선수로는 여덟 번째로 PGA투어를 제패한 그가 가장 달라진 점으로 꼽은 건 멘탈이다. 이경훈은 “예전보다 나 자신을 더 믿었다”며 “긍정적인 생각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런 이경훈의 깜짝 우승을 이끈 숨은 조력자가 있다. 정그린 그린코칭솔루션 대표다.
정 대표는 지난해 가을부터 이경훈의 심리 코치를 맡았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6) 등 정상급 선수들의 머릿속을 담당하는 그는 최근에는 리디아 고(24)의 부활을 돕기도 했다. 그 덕분에 업계에선 ‘우승 청부사’로 통한다. 선수들 사이에선 ‘나만 알고 싶은 선생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정 대표는 “이경훈 선수는 좋은 재료를 이미 너무 많이 갖고 있었다”며 “작은 변화만으로도 훨씬 더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막혔던 부분을 조금 수정해준 게 내가 한 전부”라고 했다.
정 대표는 이경훈이 PGA투어에서 우승하기에 충분한 실력을 이미 갖췄다고 봤다. 그러나 길어진 미국 생활에 대한 부담감이 족쇄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국내 무대를 평정한 이경훈이었으나 미국에선 무명 선수로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2016년 PGA 2부 투어로 건너간 이경훈은 2018~2019시즌 1부 투어에 합류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해 무명 생활이 길어지고 있었다. 1998년생인 임성재, 1995년생인 김시우 등 후배들의 활약을 지켜봐야만 했다. 정 대표는 “세계적인 선수라도 성적 앞에서는 마음이 조급해진다”며 “이는 불안감으로 바뀌는데 남자 선수들은 이를 ‘기술 수집’으로 해소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경훈도 마찬가지였다.
“이경훈 선수가 가진 수많은 좋은 재료 중에 서너 가지를 골라 바구니에 담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는 실력은 물론 열정, 근성, 끈기까지 좋은 재료가 많았는데, 이들 재료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 때문에 이경훈 선수가 가장 자신있게 중요한 순간에 꺼내쓸 수 있도록 핵심 도구를 서너 개로 추렸어요. 이경훈 선수에게 마음속 해방을 주는 데 중점을 뒀더니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정 대표는 더 나은 스코어를 원하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조급함을 없애야 한다”며 이렇게 당부했다. “사람에겐 자신에게 맞는 리듬이 있어요. 스윙 리듬은 물론 몸의 바이오리듬까지 다양한데 조급함은 이런 리듬을 모두 깨버리는 요소입니다. 라운드 전에 체크 포인트 두세 가지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시작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심호흡도 흐트러진 몸의 리듬을 바로잡는 데 좋은 도구다. 호흡을 하는 순간, 뇌에 산소가 공급되고 근육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 정 대표는 “새로운 산소가 체내에 들어가면 몸이 훨씬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나타난다”며 “심박수도 정상으로 낮춰주는 진정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샷하기 전에 꼭 심호흡을 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