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에 대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백제 온조왕 시대 가뭄과 역병 기록이 등장하며, 신라시대에도 가뭄, 부역, 전쟁 등으로 인한 전염병 발생이 십수 차례 보고됐다. 이민족과의 전쟁이 많았던 고려는 여러 차례 전염병을 겪으면서 대비원이라는 구제기관을 만들었고, 조선은 활인서라는 의료기구를 통해 국가적으로 전염병에 대처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후기까지는 발병한 전염병에 대한 적절한 연구와 치료법이 없어 격리나 회피 등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마마 혹은 두창이라고 알려져 있는 천연두는 조선시대 민중을 가장 괴롭힌 질병이다. 정약용, 박제가, 이종인 등은 중국에서 연구되던 종두법을 받아들여 인두법과 우두법을 실생활에 적용했지만 공식적인 치료법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상당 기간 사례와 시험 등이 반복된 후 1882년 지석영에 의해서야 종두법이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한때 시청률이 64%를 넘었던 국민드라마 ‘허준’을 보면,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황해도에 역병이 돌았을 때 허준은 우연히 매실이 역병을 치료하는 효과에 주목하게 된다. 매실이 효과적이라는 사례가 나타나자 당장 환자들에게 매실을 투여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허준은 매실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매실을 투여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눠 치료 효과를 측정한 뒤 매실을 치료제로 사용했다. 역병이 퍼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을 감안하면 대단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임상시험 기준으로도 매우 적절한 절차다.
의약품이 승인되기 위해서는 기준에 맞는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치료제로 사용 가능한 후보물질을 개발한 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엄격한 규정과 절차, 관리하에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해보는 제1상, 환자를 대상으로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제2상, 환자를 대상으로 후보물질이 치료제로 적절한지를 기존의 치료제와 비교하는 제3상을 거쳐야 의약품으로 승인된다. 승인된 후에도 제4상 혹은 사후감사를 통해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감염병을 위한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언제쯤에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지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효과가 우수하면서 부작용이 없는 의약품은 없다. 관련 기준과 규정을 준수해 의약품을 승인해야만 예방이나 치료의 목적에 걸맞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의약품의 효과와 부작용을 과학적으로 밝히지 못하면, 시장에 나왔을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보고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제1상을 통과한 후보물질 중 제3상을 통과해 의약품으로 승인된 비율은 7.9%에 불과하다. 과학이 덜 발달한 시대에도 치료약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보급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사례가 누적돼야만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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