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는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해 당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 당성의 역할과 위상이 재조명했다. 서신면의 당성 및 조사지 전경. 화성시 제공
경기 화성시 서신면의 당성이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이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다량으로 추가 발견됐다.
시는 지난 7일 화성 당성 7차 정밀발굴조사 현장에서 열린 결과보고회 겸 학술자문회의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이 공개되며 당성의 역할과 위상이 재조명됐다고 11일 발표했다.
화성 당성은 삼국시대 신라의 성곽으로 당항성이라고도 한다. 1971년 4월 대한민국 사적 제217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의 허가와 화성시의 의뢰로 발굴조사를 맡은 한양대학교 박물관은 이번 발굴에서 여러 차례 증개축된 대형 건물지에서 명문와를 포함한 기와, 토기류, 도기류, 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등을 발굴했다.
안신원 한양대학교 박물관장은 “이번 발굴에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과 국제 교류관계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대거 발굴됨에 따라 과거 당성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었다”며 “당성은 행정적, 군사적 거점이자 대중국 교역의 중요기지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당성 초축과 관련된 1차성 내의 대형 건물지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뤄졌다.
해당 건물지는 적심이 축조된 층위와 축조 방식, 형태 등으로 미루어 6세기 후반에서 12세기에 이르기까지 3차례 이상 반복적으로 개보축 및 확장됐으며, 기존의 적심과 초석이 재활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출토된 유물들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이후부터 고려시대 초중반까지의 것들로 행정기관에서 사찰로 변모하는 특성을 보이며, 2차 축성의 이유를 파악하는 근거가 될 전망이다.
발굴작업에서는 당성이 신라 중앙정부로부터 관리를 받았음을 추정할 수 있는 기와들이 다수 출토됐다.
이와 함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기와로 ‘임신((壬申)”, “무인(戊寅)”, “병오(丙午)”명 기와와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인 9주의 하나로 686년 설치돼 757년 웅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된 ‘웅천주(熊川州)’명 기와도 출토됐다.
한편 서철모 시장은 “당성의 초축시기와 삼국시대 이후 당성의 기능을 확인하는 조사와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당성의 역사적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 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화성=윤상연 기자 syyoon11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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