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기준 세제 개편 불가피
지방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장애인이 승용차를 구입할 때 자치단체에 내야 하는 취득세 및 자동차세 감면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배기량이 2,000㏄ 이하이거나 탑승 가능한 인원이 7~10명일 때다. 그런데 구입하려는 자동차가 배기량 개념이 없는 전기차일 때는 어떤 기준으로 감면이 될까? 엄밀하게는 두 가지 조건 가운데 배기량이 없으니 승차정원이 7명 이상일 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적용할 경우 10인승 이하의 승합차도 혜택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일부 자치단체는 세제 혜택 기준이 애초 승용차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자체 해석을 적용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항목이 자동차의 크기 구분이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종류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별표1'에 따라 배기량과 크기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배기량은 상당히 중량감 있는 기준으로 여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배기량=차급=가격’의 등식이 오랜 시간 성립돼 왔던 탓이다. 이에 따라 개별소비세, 자동차세 등의 갖가지 관련 세금도 배기량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중이다.
시행규칙 별표1의 승용차 규정에 따르면 경형은 '배기량이 1,000㏄ 미만이고 길이 3.6m, 너비 1.6m, 높이 2.0m 이하'를 나타낸다. 여기서 핵심은 배기량과 크기가 흔히 말하는 'AND' 규정이어서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형 또한 '배기량은 1,600㏄ 미만이고 길이 4.7m, 너비 1.7m, 높이 2.0m 이하'여야 한다. 그런데 중형으로 가면 'AND'가 아니라 '또는(OR)' 규정으로 바뀐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형은 '배기량이 1,600㏄ 이상 2,000㏄ 미만이거나 길이, 너비, 높이 중 어느 하나라도 소형을 초과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일부 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친환경차를 구입할 때 면세 조건으로 중형의 크기를 조건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데 친환경 움직임에 따라 배기량이 사라지는 것은 세제의 전면적인 개편 또한 불가피한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가격 및 크기와 무관하게 배터리 전기차라면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자동차세, 그리고 배기량이 없으면 감면되는 개별소비세는 물론 다양한 복지 부문에서도 자동차 배기량은 주요 기준이다. 대표적으로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및 일반 국민들의 재산세 부과에도 자동차 배기량이 일부 지표로 활용된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8월 한국지방세학회는 학술대회를 통해 배기량이 아닌 새로운 기준의 과세 방안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 배기량 기준의 과세 체계가 친환경차 보급을 촉진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오히려 역행한다는 지적도 쏟아냈다. 그러자면 모든 자동차 구분의 기준이 되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별표1이 규정하는 자동차의 구분법을 바꿔야 한다. 배기량을 대체하는 다른 항목이 들어가야 하는데, 문제는 이 부분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배기량을 대체하기 위해 배터리 용량을 기준 삼으면 충전 불편을 덜기 위해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일수록 세금이 많이 부과돼 오히려 보급에 걸림돌이 된다. 반면 소용량 배터리에 내연기관이 함께 탑재된 PHEV 형태의 대형차는 세금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서둘러 한국도 탄소배출을 기준 삼자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러나 탄소 배출량을 적용하면 내연기관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만큼 자동차회사의 위기를 자초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러니 전기차 비중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지금의 배기량 체계를 유지하되 미래의 어느 시점부터 탄소배출량을 대체 개념으로 추가하고 이후부터는 사용하는 동력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사전에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우선이지만 정부의 관련 논의는 아직 없어 보인다. 그만큼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절대 기준인 점도 있고 미국과 FTA에 따라 배기량 기준 세금 체계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변화를 주저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배기량에 배터리용량 또는 탄소배출량 등의 새로운 기준을 더하거나 바꾸는 것은 국민 전체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서둘러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 세제 개편 없이 친환경차 보급을 늘리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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