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다.”(이건희 삼성 회장, 2010년 5월 삼성 사장단 회의)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이 유산 중 1조원을 의료사업에 기부한다. 2008년 4월 “재산 일부를 ‘유익한 일’에 쓰겠다”는 고인의 사재출연 약속이 13년 만에 지켜지게 됐다. 이 회장 유족들은 28일 삼성전자를 통해 “감염병·소아암·희귀질환 극복에 1조원을 기부한다”고 밝히며 “의료공헌이 고인이 생전에 약속한 사회 환원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고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또 “인류사회공헌과 아동복지에 각별한 관심을 뒀던 유지를 계승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의 사재출연 약속은 13년 전인 2008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은 “차명 재산을 실명으로 전환하고 벌금·세금을 제외하고 남는 것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삼성그룹은 현금 또는 주식 기부, 재단 설립 등의 방안을 검토했다. 고인이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최근 경제계에선 사재출연 약속이 재단 설립으로 구체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부각된 감염병 대응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의료사업 기부로 결정됐다.
기부금 1조원 중 7000억원은 감염병 대응에 투입된다. 이 가운데 5000억원은 국내 최초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활용된다. 이 병원은 고도 음압병상, 음압수술실 등 첨단 설비까지 갖춘 150병상 규모로 계획됐다.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과 필요 설비 구축 등 감염병 대응 인프라 확충에 쓰인다.
나머지 3000억원은 어린이 환자 지원에 쓰인다. 생전 이 회장의 남다른 ‘어린이 사랑’이 반영된 결과다. 고인이 1987년 회장 취임 이후 처음 시행한 사회공헌 활동도 어린이 복지사업이다. 1989년 이 회장은 사재 102억원을 출연해 ‘삼성복지재단’을 설립했고 그해 12월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 첫 번째 어린이집인 ‘천마어린이집’을 세웠다.
3000억원 중 2100억원은 앞으로 10년간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된다. 앞으로 10년간 소아암 환아 1만2000여 명, 희귀질환 환아 5000여 명 등 총 1만7000여 명의 어린이가 지원을 받게 될 전망이다. 소아암과 희귀질환 임상연구, 치료제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유족들은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주관 기관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 지원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황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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