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에너지 얼라이언스’ 출범식. 이날 두산중공업, DL에너지, SK E&S, E1, GS에너지, 포스코에너지, 한화에너지, 현대자동차, 효성중공업 등 민간 9개 회사는 이날 탄소중립 대응과 에너지전환 추진을 위한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대형 에너지 기업들이 협의체를 구성한 것은 처음이어서 산업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참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도 이날 행사에 전원 출동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축사를 위해 참석했다.
에너지동맹은 민간 기업이 뜻을 모아 자발적으로 구성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었다. 과연 그럴까. 기업들의 얘기는 달랐다. 에너지동맹의 시작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업부는 일부 기업에 현 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탄소중립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민간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초엔 산업부 1급 고위직이 3개 기업 CEO와 비공개로 만났다. 당시 회동에서 산업부는 참여 기업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대한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는 논리였다. 결국 3개 기업은 각자 두세 곳의 기업을 모집하기로 했다.
협의체 의장사를 맡은 SK E&S도 총대를 멨다. 에너지동맹에 뒤늦게 참여한 한 기업 대관 임원은 “모 기업으로부터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정부 주도로 구성되는 협의체여서 거절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기업은 극소수”라며 “대다수 기업이 산업부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출범식 등 협의체 구성 과정에서 소요된 모든 비용은 특정 기업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중립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민간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민관 가교 역할을 할 협의체가 없는 것도 맞다. 다만 당초 알려진 것처럼 협의체가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산업부 주도로 시작됐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차라리 정부가 솔직하게 민간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웠으면 어땠을까. 본지 문의에 산업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탄소중립을 위한 기업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겠다는 ‘낮은 자세’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인지 묻고 싶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협의체 역할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지금도 에너지기업들은 탄소 절감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협의체는 6일 출범식이 끝난 후에서야 향후 추진 과제를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원사도 추가 모집할 계획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정부 지침을 민간 기업에 전달하는 ‘무늬만 협의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의로 출범한 협의체가 ‘에너지 관치’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줄까 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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