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헤지(위험회피)를 한 펀드 등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해 판매를 어렵게 하려다 업계 반발에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라임 사태’ 등으로 홍역을 치른 당국이 ‘파생상품은 무조건 나쁘다’는 발상으로 무리한 규제를 하려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했다. 시행령에 따라 다음달 10일부터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란 개념이 도입된다. 최대 손실가능 금액이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펀드 등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다.
금융회사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할 때 그 과정을 녹취하고 2일 이상의 청약 철회 기간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은행은 아예 고난도 사모펀드를 판매할 수 없게 된다.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판매사들이 상품 거래를 꺼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금융위는 ‘최대 손실가능 금액은 파생상품 투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실(위험평가액)을 합산해 산정한다’고 규정했다. 문구대로라면 헤지를 위해 파생상품에 투자한 것도 위험평가액 산정에 반영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헤지를 하면 금융상품의 위험도가 내려가는 게 일반적인데 이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헤지를 통해 안전해진 상품을 팔기 어렵게 되면 고객으로서도 손해”라고 말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자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환 헤지 거래, 기초자산 손익을 그대로 복제하는 스와프 거래, 재산의 변동성 축소 등을 위해 롱쇼트 전략(매수와 매도를 동시에 구사해 안정적 수익을 얻는 차익거래 수단) 등을 활용하는 펀드 등은 파생상품 위험평가액 산정에서 제외하겠다’는 공문을 자산운용사 등에 보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한 ‘금융투자업 규정’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개념이 신설되는 다음달 10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 판매 사태’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 등이 연이어 터진 게 금융당국이 황당한 규제를 하려던 배경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책임을 금융사와 소비자에게 넘기고 민원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이 같은 규제를 생각해낸 것 같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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