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결혼식을 앞둔 직장인 A씨는 최근 서울에 있는 한 백화점 수입 주얼리 매장에서 결혼반지 한 쌍을 700만원에 구입했다. 예상한 예산의 두 배를 웃도는 값을 치렀다. A씨는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해 남는 경비를 보태 명품 주얼리를 구매했다”며 “국내 재고가 부족해 결혼 전까지 물건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근 명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대표적인 사치재로 꼽히는 주얼리업계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주얼리 수입액이 지난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수입 브랜드 위주로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억눌린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고가 주얼리업계가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복 소비에 수입 주얼리 ‘반짝 특수’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주얼리(귀금속제 신변장식용품) 수입액은 8722만6000달러(약 975억원)로 집계됐다. 통계 작성 이래 월별 기록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올해 1분기 주얼리 수입액은 2억2046만달러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1분기 주얼리 수입의 53%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산(産) 제품이 차지했다. 두 나라 제품 수입 비중은 작년 같은 기간(47.1%)보다 5.9%포인트 높아졌다. 이탈리아는 불가리 다미아니를, 프랑스는 부셰론 반클리프앤아펠 카르띠에 등 세계적인 명품 주얼리·패션 브랜드를 보유한 나라다.
수입 주얼리 주요 판매처인 백화점 실적도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백화점 판매는 전년 대비 33.5%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월(52.9%) 이후 증가폭이 가장 컸다. 해외 명품만 따지면 1분기 현대백화점은 64.5%,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은 각각 55.1%, 53.0%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종 업체는 “남 얘기”
토종 주얼리업계는 모처럼 찾아온 특수가 반갑지만은 않다. 수입 명품 브랜드들이 국내 고가 주얼리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서다. 월곡주얼리연구소의 주얼리 브랜드 선호도 조사(2019년)에 따르면 선호도 상위 5개 업체 모두 샤넬 스와로브스키 카르띠에 등 수입 브랜드다. 제이에스티나, 스톤헨지 등 국내 업체는 6~10위권에 머물렀다.한때 국내 주얼리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서울 종로 귀금속거리 일대도 보복 소비가 가져온 특수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종로 귀금속거리는 1990년대 중반 들어 2000여 개 업체가 모일 만큼 번성했다.
외환위기 이후 내수 경기가 확 꺾이면서 주얼리업체들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마저 중국, 인도 등 후발국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렸다. 여기에 유럽, 미국의 명품 브랜드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국내 토종 주얼리업계는 수십년째 내리막길을 걷는 추세다. 한 주얼리업체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종로 귀금속거리에서 발품을 팔며 해외 명품 디자인대로 제작을 의뢰하는 소비자가 많았다”며 “권리금이 수억원씩 붙던 귀금속거리에서 최근 무권리금 임대 물건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국내 귀금속 관련 사업체는 2018년 기준 1만5000여 개다. 이 중 1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 94%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봉승 한국주얼리산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세계적인 수준의 세공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계의 명맥이 유지되려면 주얼리 유통 플랫폼 구축 등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