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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호 칼럼] K 반도체, 美·中은 유치못해 안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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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은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한 송전선(서안성~고덕 간 24㎞)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 탓이었다. 한국전력과 주민들은 갈등조정위원회를 꾸려 28차례나 회의를 했지만, 합의는 더뎠다.

우여곡절 끝에 주거지역을 지나는 송전선을 땅에 묻고 사람이 살지 않는 산악구간(1.5㎞)의 송전선도 지중화하기로 했다. 2023년 2월까지 임시로 송전탑을 세워 공장에 전력을 공급한 다음 2년 뒤 선로를 지중화하고 송전탑은 철거할 예정이다. 2년 쓰고 버릴 송전탑 짓는 데 들어가는 수백억원은 삼성이 부담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탈(脫)원전 정책 등에 따른 전력난 우려로 1조7000억원가량을 들여 경기 이천, 충북 청주에 LNG(액화천연가스) 열병합발전소를 1기씩 지을 계획이다. 24시간 가동하는 반도체 공장은 전력 공급이 잠깐이라도 끊기면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반도체업계가 직면한 문제는 전력만이 아니다. ‘물 전쟁’도 만만치 않다. 120조원을 투자해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대 415만㎡(약 126만 평)에 반도체 공장 4개를 건설할 예정인 SK하이닉스는 용수 확보와 방류수 처리 문제로 한때 골머리를 앓았다. 하루 26만t의 공업용수를 팔당저수지에서 하남을 거쳐 용인으로 끌어오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하남시 반발에 부딪혔다. 지금은 해결됐지만 안성시는 이 공장에서 나오는 방류수가 지나는 것을 반대했다. 갈등을 겪은 끝에 용수는 여주보에서 가져오고 방류수는 기존 계획대로 안성천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 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최근 정부에 건의한 내용 중 첫 번째는 인프라(물, 전력) 지원이었다. 반도체산업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공장 신·증설 걸림돌부터 치워주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전력·용수 공급 방안부터 마련하고 지자체와 지역 주민 갈등 조정에도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관련 업체에 투자를 주문했다. 20조원(약 170억달러)짜리 삼성전자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텍사스주와 뉴욕주 애리조나주 등이 1조원가량의 세금 혜택을 약속했다. ‘반도체 자립’을 선언한 유럽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근 “27개 유럽 기업과 함께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36억유로(약 4조8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수도권 규제를 비롯한 겹겹 족쇄(산업안전법, 중대재해처벌법 등)가 기업들을 해외로 등 떠미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국은 미·중 반도체 패권 싸움의 한복판에 휘말린 신세다. 반도체 없이는 어떤 산업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데다 국가 안보와도 직결돼 있어 사활을 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자국에서조차 제때 공장을 못 짓는다면 ‘반도체코리아’의 미래는 없다. 삼성전자가 2019년 ‘반도체 2030 비전’을 통해 시스템반도체 육성과 파운드리(수탁생산) 생태계 조성 의지를 밝혔지만, 개별 기업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파운드리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시장점유율 18%)는 대만 TSMC(56%)와 버거운 경쟁을 하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7, 2019년 방한 때 평택·오산 미군기지에서 헬기를 타고 서울 용산기지로 이동하면서 본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건물이다. 이런 걸 미국에 지었어야 하는데…”라며 부러워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팹(공장) 1개 길이는 530m로 서울 롯데월드타워(555m)를 눕혀놓은 것과 비슷하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반도체 공장을 정작 한국에선 제대로 짓지 못하는 현실을 바로잡지 못하면 “(반도체) 세계 1위를 지키고 격차를 벌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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