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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 위해 국민 노후자금 헐자는 지자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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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 도로임을 감안해도 통행료가 과도하다.”(지방자치단체) “국민 노후자금을 허는 식의 통행료 인하는 불가능하다.”(국민연금공단)

강원 미시령터널과 경기 일산대교 등 민자 도로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국민연금공단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부족한 재정 때문에 일정 수익을 약속하고 국민연금을 끌여들여 민자 도로를 만들었는데, 이용자들의 통행료 부담이 커지자 국민연금에 이를 낮추라고 압박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롯해 최문순 강원지사 등 이른바 여권 대권 ‘잠룡’들이 나섰다. 국민연금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강원도 “국민연금에 돈 못 준다”
19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강원도는 국민연금에 지급해야 할 손실보전금을 반년째 미루고 있다. 작년 9월 강원도가 국민연금 측에 통행료 인하를 요구하며 지급 보류를 결정했다. 유사한 사례로 2016년 경기도는 일산대교에 대한 손실보전금 지급을 거부했다가 패소한 바 있다. 기존 판례까지 있음에도 같은 갈등이 반복된 셈이다.

경기 김포와 고양을 잇는 일산대교를 놓고도 양측의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지난 16일 ‘일산대교 무료 통행 촉구 건의안’을 의결해 본회의에 상정했다.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의결이 이뤄지면 정부, 국회에 공식 건의해 공론화한다는 계획이다.

경기도의 이 같은 행보는 이 지사가 주도하고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는 지난달 24일 ‘공정한 민자도로 운영을 위한 토론회’를 공동 개최하며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이날 이 지사는 “(국민연금의 일산대교 투자 구조는) 형법적으로 봤을 때 배임행위”라며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일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국민연금을 몰아붙였다.
민자도로 곳곳에서 갈등
미시령터널과 일산대교는 2000년대 초반 부족한 재정으로 인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부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민자사업으로 추진됐다. 2008년과 2009년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완공한 자산을 국민연금이 각각 2247억원, 2755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국민연금이 30년간 유료 운영권과 최소운영수익(MRG)을 보장받고 이후 지자체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지자체는 부족한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고,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윈윈’ 관계로 시작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갈등 관계로 변했다. 통행료 수입이 예측을 밑돌아 도에서 보상해줘야 할 손실보전금 규모가 늘어나면서다.

미시령터널은 2016년 2억원에 불과하던 손실보전금이 2017년 이후 100억원대로 크게 늘었다. 특히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이후 미시령터널 이용이 2016년 563만 대에서 작년 말 205만 대로 60% 이상 급감했다.

예산 지출이 늘어난 데다 일반 도로에 비해 비싼 통행료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자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은 국민연금의 투자 구조를 ‘고리대금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갈등 고조에 민자 SOC 위축 우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제 값을 주고 대교를 인수한 뒤 최근 저금리 환경에 맞춰 자금을 조달하거나, 원하는 기준을 맞춰줄 새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 외엔 해결책이 없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은 이미 확보한 수익률을 이유 없이 낮출 경우 배임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통행료를 낮추되 민자 운영 기간을 늘리는 식의 사업 재구조화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이 역시 당장의 통행료는 낮출 수 있지만 도로 이용자나 새 투자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조삼모사’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민자 SOC 사업에 대한 갈등이 매번 불거지면서 투자 위축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7년 117건에 달한 국내 민간투자사업은 2010년 이후 꾸준히 줄어 최근엔 연간 10건 안팎에 그치고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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