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호주, 대만, 뉴질랜드 등 아·태지역 국가는 신속하고 엄격한 통제, 효과적인 확진자 추적으로 피해 규모를 줄여 방역 모범국으로 부상했지만, 이들 지역의 접종률은 5%도 되지 않는다.
16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은 영국·미국과 아·태지역의 접종률 차이에 대해 두 지역의 초기 방역 성과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국과 미국은 코로나19 피해가 워낙 심각해 백신 접종을 서둘렀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선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했다.
미국은 누적 확진자, 사망자 규모에서 전세계 1위에 올랐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도 상위권에 오르면서 '방역 실패'를 여실히 드러냈다. 반면 호주, 한국, 대만, 뉴질랜드 등은 대규모 검사를 통해 확산세를 통제하며 '방역 모범국'으로 불렸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평가는 달라졌다. 현재 미국에선 전 국민의 37%가 1차 접종을 완료했다. CNN방송은 미국이 올해 여름까지 접종률 70∼80%를 달성, 집단면역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은 현재 최소 1회 접종률이 47%에 달한다. 반면 뉴질랜드, 태국, 대만, 한국, 일본은 모두 접종률이 채 4%도 안 된다. 호주도 5%를 밑돈다.
영·미의 절박했던 '백신 도박'…아시아·태평양 '신중 모드'
이는 영국과 미국이 방역에 실패하면서 백신을 확보하는 데 일종의 '도박'을 한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국가의 방역 역량이 한계치에 내몰리면서, 백신 확보에 '올인'했다는 것.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의 빌 바우텔 공중보건 교수는 "영국과 미국은 자기들이 초래한 난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영국은 이미 지난해 5월에 임상시험도 마치지 않은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1억회 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7월엔 화이자 백신 3000만 회분을 포함, 9000만 회분에 대해서도 추가 계약했다. 미국도 화이자와 백신 6억 회분에 대해 계약을 체결했다.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은 "영국과 미국은 다른 나라에 앞서 백신에 크게 걸었고, 지금 전세계는 백신 공급 문제에 직면했다"며 "백신 공급을 줄을 서는 것으로 생각해보면 영국과 미국이 그 줄의 첫 차례"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처럼 인명 피해가 크지 않았던 아태지역 국가는 백신 도입에 신중했다. 백신이 짧은 기간에 개발돼 예방 효과와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 결국 코로나19 종식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접종률이 낮은 곳에선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생기면서 확산, 각국의 백신 성과를 수포로 만들 수 있어서다.
바우텔 교수는 "국민의 90%가 백신을 맞지 않은 나라에선 큰 피해가 일어나기 마련"이라며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타나는데 대다수 주민이 백신을 맞지 않은 '섬'에 있고 싶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