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여성 A 씨는 후배들과 카톡에서 대화하던 중 화들짝 놀랐다. 유튜브 등을 통해 알게 된 '힘죠'라는 신조어를 사용했다가 남성 혐오자가 될 뻔했다. 한 후배는 개인톡을 보내 "선배 그거 남혐 단어에요. 알고 쓰신 건가요?"라고 귀띔했고, A 씨는 급히 단톡방에 "나는 절대 남혐 아니다"라며 해명을 해야 했다.
방송인 공서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힘주다'란 의미로 '힘죠'를 사용했다가 남성 혐오 사이트 메갈리아(이하 메갈) 회원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댓글 테러를 받은 공서영은 "메갈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사이트를 방문한 적도 없다"며 해명해야만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남혐 단어를 자연스럽게 썼다며 공서영이 '메갈'이라고 주장한 반면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표현인데 '남혐'이라는 비난은 도를 넘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처럼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신조어, 특히 혐오를 조장하는 단어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어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 신조어라 생각하고 사용한 말이 알고 보니 남혐 혹은 여혐인 경우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남혐민국(남성 혐오+대한민국) 되겠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하가 '남성 비하' 단어를 사용했다는 글이 게재됐다. 네티즌들이 주목한 것은 하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자막이었다. 지난 2월 게재된 이 영상은 하하가 구독자 10만을 돌파해 실버버튼을 받는 장면이 담겨있다.
영상에서 하하는 아들 드림 군을 들쳐 안으며 "아빠 실버버튼 나왔어. 너와 언박싱 해 보고 싶어"라며 기쁨을 드러냈다.
아래엔 '오조오억년 만에 온 실버버튼'이라는 자막이 사용된 것. 이후 많은 네티즌들이 "오조오억년이 무슨 뜻인지 알고 사용하는 거냐", "남혐 단어다. 편집자는 빨리 수정하라" 등의 반응을 보이며 꼬투리를 잡았다.
'오조오억'은 '아주 많다'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2017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연습생에게 한 팬이 '십 점 만점에 오조오억점'이라고 칭찬한 글이 화제가 되면서 각종 팬덤에서 '오조오억점', '오조오억년' 등으로 사용해 왔다.
반면 메갈, 워마드 등 남혐 사이트에서는 남성의 정자 수를 비하하는 의미으로 소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하는 해당 영상에 대한 설전이 이어지자 비공개로 전환했다.
뜨거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표현한 '허버허버'란 단어도 주의해야 한다.
인기 유튜버 고기남자는 지난해 6월 유튜브 채널에 '스페어립 바베큐'에 대한 영상을 올렸다. 영상 7분경 고기를 먹는 모습 아래에 '허버허버'라는 자막이 삽입됐다.
수년이 지난 뒤 고기남자가 구독자 100만을 바라보는 인기 유튜버가 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 영상이 재조명 된 것.
'남혐'이란 지적에 고기남자는 "어지간히들 하세요. 대 혐오의 시대"라며 "바쁜 인생살이에 시간도 넘치는구나"라며 비꼬았다. 유사한 항의 댓글이 이어지자 고기 남자는 결국 입장문을 게재했다.
고기남자는 "허겁지겁 먹는 걸 나름 위트있게 표현한다고 순간적으로 머리속에 나온 단어를 썼던 것"이라며 "당시 그게 그런 용어로 쓰인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나는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밈을 정확히 알고 써야 하는 유튜버로서 신중치 못한 단어 선택에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후 여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뭘 또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변명하느냐", "페미를 희대의 욕이라고 생각하나 봄", "그냥 단어 선택 조심한다고 하면 됐을 텐데", "구독 취소한다"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허버허버' 사태로 99만에 육박하던 고기남자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85만 명으로 떨어졌다.
유튜브 서울대공원 TV 또한 '허버허버'를 사용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4월의 동물로 선정된 '킹카쥬'의 귀여운 모습을 담은 영상에 '허버허버'라는 자막을 사용한 것이다.
서울대공원 측은 "논란되는 표현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언어임을 반영해 영상을 즉시 삭제하겠다"며 "이같은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2월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도 기안84가 밥을 먹는 모습에 '앗 뜨거, 허버허버'라는 자막이 사용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카카오에서는 '허버허버'라고 쓰여진 캐릭터 이모티콘이 출시했다가 반감을 샀고 결국 상품 판매를 중지했다. 카카오 측은 "언어의 시대상을 반영해 작가 혹은 제작자와 협의를 통해 판매 종료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다이어트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버 핏블리는 '웅앵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댓글 폭격을 받았다.
핏블리 측은 "특정 커뮤니티 성향과 일절 관련 없다"면서 "'웅앵웅'이란 단어가 커뮤니티에서 두루 쓰이는 말인 줄 알았다"라고 해명한 후 사과했다.
걸그룹 트와이스 지효도 2020년 1월 팬들과 V라이브 채팅을 진행하던 중 "자꾸 관종 같으신 분들이 '웅앵웅' 하시길래 말씀드리는데, 그냥 몸이 아팠어요"라고 말해 '남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웅앵웅'은 2016년 한 트위터리안이 잘 안 들리는 영화의 대사를 '웅앵웅 초키포키'라고 표현한 것에서 시작됐다. 2020년대 일부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이 말할 때 논리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웅앵웅'을 사용, 대표적 남혐 단어로 알려져 있다.
'오조오억', '허버허버', '웅앵웅' 외에도 많은 남혐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김치녀', '된장녀' 등의 말로 모욕적인 말을 들은 페미니스트들의 '미러링'(차별, 혐오 행위를 반사하듯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유튜버는 "유튜브, 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고 있는데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고 인지했다. 이어 "증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기준도 높아졌으니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콘텐츠를 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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