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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콘텐츠인사이드] 경험과 새로움의 교차점 찾은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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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젠 꽤 익숙한 문구가 됐다.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수상 소감을 얘기할 때 인용한 말이다. 원래는 ‘아이리시맨’ 등을 만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한 얘기다. ‘개인적인 것’은 모든 스토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그러나 이를 섬세하게 구현하면서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봉 감독의 ‘기생충’은 이토록 어려운 일을 해냈기에 오스카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1년 만에 다시 그 영광에 도전하는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사진)도 그런 점에서 더욱 기대된다. 이 작품은 오는 25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아카데미 전초전’이라고 불리는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것을 포함해 총 105관왕을 차지했다. 20억원의 저예산 영화가 이토록 호평받는 이유도 스코세이지의 얘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아주 개인적이면서, 또 보편적이다.
외국인들이 눈물 쏟는 우리 이야기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인 정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제작사가 만든 온전한 미국 영화다. 이 때문에 ‘기생충’과 동일한 K콘텐츠로 분류할 순 없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긴 스토리와 정서, 이를 표현하는 캐릭터와 배우들까지 모두 한국에서 출발했다. 해외 평단에서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를 보고 한국 작품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이 영화는 이민자의 이야기를 한 가정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 가족은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이주한다. 부부가 병아리 암수를 가려내는 감별사로 일하는 것부터 정교한 설정이 돋보인다. 당시 많은 한국 출신 이민자가 미국에서 병아리 감별 등 단순 노동을 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갔다. 어떻게든 성공하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제이콥과 이를 불안한 듯 바라보는 모니카의 갈등도 왠지 멀지 않게 느껴진다. 이민 간 부부만이 느끼는 긴장감을 표현하면서도, 여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부부의 모습이 담겼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되는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 역도 마찬가지다. 고춧가루 등을 잔뜩 싸서 미국으로 오고, 화투를 정겹게 치는 모습이 우리네 할머니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신기하게도 한국 정서가 가득 담긴 이 작품을 보고 외국인 관객들이 눈물을 쏟는다. 윤여정은 “선댄스영화제에서 영화를 봤을 때 미국 관객 모두가 울어서 왜 그런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민자 가족이 느낀 불안과 희망은 비단 한국 출신 가족에 한정되지 않는다. 흑인도, 히스패닉도 모두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공감한다.
세련된 문법으로 풀어낸 모두의 경험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많다. 그럼에도 ‘미나리’가 호평받는 이유는 ‘교차점’을 잘 찾아낸 덕분이다. 이는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의 중심에 서게 된 비결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굶주림에 고통받았던 개발도상국의 경험을 갖고 있다. 오랜 세월 식민 지배도 겪어 봤고, 돈을 벌러 해외로 떠난 많은 이민자들은 인종 차별도 겪었다. 그런데 이 경험을 투박하게 담기보다 세련된 문법으로 그릴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유럽 등 콘텐츠 강국의 기법을 빠르게 흡수하고, 새롭게 작품을 만들어 끈질기게 글로벌 시장 문을 두드린 덕분이다.

‘미나리’는 미나리, 아이의 심장 등 다양한 메타포(은유)를 활용해 이민자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한다. 김은희 작가의 ‘킹덤’도 ‘좀비물’라는 해외 장르를 가져오면서 세계 어느 곳에나 있었던 민초들의 고통을 담아내지 않았던가.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알아서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건강하게 해줘.” 순자의 대사처럼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미나리 같은 작품을 만들고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곳이든 뿌리 내리고, 척박해도 씩씩하게 자라면서 말이다. 올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기대된다.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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