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착한 활동만 매기는 상징적(symbolic)인 지표보다는 재무적 성장과 장기 기업가치를 반영한 실질적인(substantive) 지표를 고려해야 합니다.”
안드레스 기랄 연세대 경영대학 부학장(사진)은 1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우수기업을 골라내기 위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기랄 교수는 스페인, 독일, 일본, 미국 등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 등을 가르쳐 온 전문가다. 2016년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으며 한국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랄 교수는 “세계적으로 기업들의 ESG 활동을 평가하는 지표만 200개가 넘는다”며 “ESG는 단순 사회공헌 활동과 달리 수익률과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결국 숫자로 보이는 성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기업의 ESG 활동이 부수적인 사업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고, 핵심 사업과 연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LG화학의 신제품을 예로 들었다. 그는 “LG화학은 ‘썩는 플라스틱’이라고 불리는 바이오플라스틱 개발에 성공했다”며 “친환경 경영을 펼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식물, 미생물 등을 활용해 만든 플라스틱으로 길어도 1년 안에 완전 분해가 가능하다. 기존에 석유를 원료로 한 플라스틱이 썩는 데 50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기술 발전이다.
그는 “기업의 ESG 전략이 단순히 외부 규제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제품과 기술로 이어질 때 더 높은 수준의 ESG 경영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 규제, 투자자들의 요구에 억지로 등 떠밀려 ESG 경영을 하는 게 아니라 제품 및 서비스 혁신을 통해 ESG를 핵심 경영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는 기업들의 ESG 평가 과정에서도 이를 구분해낼 수 있는 지표를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착한 기업’이 되려면 으레 해야 하는 상징적인 활동보다는 실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활동을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기랄 교수는 “지역마다 실질적 기준에 대한 합의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부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인적 자원(human capital)이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 기업들이 지역사회에 자연재해, 질병 등이 발생할 때마다 기부하는 것은 이런 인적 자원을 지키는 게 곧 미래 가치로 연결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부는 모건스탠리, 톰슨로이터 등 해외 평가사의 기준에 포함되지 않거나 반영 비율이 매우 낮다. 외국에선 개인이 아니라 법인이 기부하는 사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기랄 교수는 권역에 따라 각기 다른 ESG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평가 기준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유럽 평가기관도 유럽 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 등을 고려해 자체 지표를 마련하고 있다”며 “한국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글로벌 평가 기준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국내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선아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suna@hankyung.com